효성 조현문, 배우자 외도설 유포 의심해 조현준에 '비리 고발' 겁줬다

입력
2022.12.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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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문 강요미수 혐의 공소장 보니
2011년 계열사 감사 주도한 이후 
외도 소문나자 형 조현준 회장 의심
고발 압박하며 주식 고가 매수 요구
조 회장 거부하자 2014년 배임 고발

효성그룹 일가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 10년 전 불거진 배우자 외도설 유포자로 친형인 조현준 효성 회장을 의심한 것이 그룹을 떠난 결정적 계기로 나타났다. 조 전 부사장은 조 회장이 루머를 유포한 것으로 보고 친형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효성그룹 내 지분 정리를 위해 자신의 보유 주식을 고가에 사게 하려고 홍보대행사 대표와 함께 조 회장의 경영 비리 고발 카드로 협박을 모의하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달 조 전 부사장을 강요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기며 공소장에 이 같은 내용을 적시했다. 공소장에는 2014년 조 전 부사장이 조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며 촉발된 '효성 일가 형제의 난(亂)' 배경이 상세히 담겼다.

한국일보가 26일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2011년 효성그룹 계열사 감사를 주도해 조 회장이 계열사 부당지원에 관여했다는 결과를 발표한 뒤 미운털이 박혔다. 조석래 명예회장이 차남인 조 전 부사장에게 "분란을 일으킨다"고 질책한 뒤 가족 간 갈등이 깊어졌다. 가족 간 불화는 2012년 말 조 전 부사장 배우자가 사내에서 외도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커졌다. 조 전 부사장은 조현준 회장이 그룹 홍보팀에 소문을 유포하도록 지시했다고 의심하고 2013년 2월 퇴사했다.

조 전 부사장은 친형과 가족에게 '복수'를 기획했다. 그는 퇴임 전달 홍보대행사인 뉴스커뮤니케이션즈의 박수환 대표와 외도 소문 유포자 색출 및 언론 대응 명목으로 용역계약을 맺었다. 2013년 4월에는 조 회장을 압박해 자신의 그룹 내 비상장 부동산 계열사 지분을 고가에 사게 할 목적으로 추가 계약을 맺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2013년 2월 조석래 명예회장의 비서실장을 찾아가 '조현문이 효성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보도자료를 주며 "배포를 안 하면 가방 5개에 꽉 차는 조현준 비리 자료를 들고 서초동(검찰)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석래 명예회장은 "보도자료가 사실과 다르다"며 조 전 부사장 측 요구를 거부했다.

조 전 부사장은 같은 해 7월 조현준 회장을 직접 겁주기로 했다. 조 회장이 모 언론사 주필 등과 골프를 치며 동생(조현문)과의 관계에 신경 쓴다는 얘기를 전해듣자, 조 전 부사장은 박수환 대표를 내세웠다. 박 대표는 조 회장을 호텔에서 만나 "배우자 지라시는 효성이 조현문을 내쫓으려고 만든 게 분명하다. 사과하지 않으면 서초동에 갈 것"이라 했다. 조 전 부사장은 두 달 뒤 재차 조 회장에게 "내 명예회복을 위해 모든 비리를 하나씩 밝히겠다. 모든 것은 가족이 초래했다"는 메시지를 박 대표를 통해 전달했다. 자신의 지분을 시민단체에 넘겨 비리를 조사하도록 할 것이란 경고도 더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조 회장과의 만남에 대비해 미리 'HJ(조현준)와 Talk point' 문건을 작성하며 압박 전략을 짜뒀다.

하지만 조 회장의 반응이 없자,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효성 계열사 대표들과 조 회장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조 명예회장은 차남인 조 전 부사장과 화해를 시도했지만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답을 듣자, 지분 정리 협상을 하라고 장남인 조현준 회장 측 변호사에게 말했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조 전 부사장은 부모와 친형에 대한 압박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 2015년 3월 조 전 부사장은 부모를 찾아 "저한테 부모라 할 자격도 없다. 조현준을 평생 괴롭히겠다"고 경고했다. 박 대표가 충격을 줄 타깃을 'M(모친)'으로 설정해 조현준 회장에 대한 요구를 관철하자며 제시한 대로 움직인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은 "부인 관련 지라시는 당신(조현준)이 재벌 부인들에게 소문낸 거 아니냐"고도 말했다.

조현준 회장은 가족과 자신에 대한 동생의 압박이 계속되자 2017년 조 전 부사장을 고소했으며, 조 전 부사장은 5년 만에 재판에 넘겨졌다. 박 대표는 분쟁 해결 대가 등으로 매달 2,200만 원씩 약정하고 3년여에 걸쳐 11억 3,000만 원을 수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공갈미수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손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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