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새벽 국회 본회의 통과로 확정된 내년도 예산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서민 부담 완화와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위한 예산이 정부안보다 1조7,000억 원 늘었다는 사실이다. 내년에 예고된 '경제 한파'를 국회가 외면하지 못한 것이다.
이날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증액된 주요 사업은 △에너지바우처 단가 인상(18만5,000→19만5,000원) △공공 전세임대주택 공급 확대(3만→3만7,000호) △노인일자리 추가(6만1,000개) △지역사랑상품권 공급(3,525억 원 신규 편성) 등이 대표적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전세임대주택 공급 예산 하나만 6,630억 원 늘었고, 대중교통 이용이 잦은 서민층을 위해 '알뜰교통카드 마일리지 플러스' 지원횟수를 월 44회에서 60회로 확대하는 예산이 27억 원 추가됐다. 민간·가정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0~2세 아동 대상 기관보육료를 2%포인트 추가 인상하는 데 183억 원을 더 배정했다. 교사 겸직 어린이집 원장에 대한 수당 지급을 1년 연장하기 위해 68억 원의 예산을 추가했다.
공공형 노인일자리 확대 목적의 예산도 922억 원 늘렸다. 이에 따라 내년 전체 노인일자리는 이로써 82만2,000개에서 88만3,000개로 확대된다. '이재명 예산'으로 분류된 지역화폐 예산은 정부안에서 0원이었으나, 3,525억 원으로 신규 추가됐다. 이와 함께 반도체 산업 투자(1,000억 원), 이태원 참사 관련 안전투자(213억 원) 관련 예산도 확대됐다.
이외에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마약 범죄를 근절하고자 수사·탐지 장비와 중독 재활·예방 프로그램 확대를 위해 76억 원을 확대 반영하고, 태풍 힌남노로 인한 포항 지역 기업 복구비 1,126억 원, 식량안보 강화를 위한 밀·콩 등 전략작물 직불금 401억 원 등을 보강하기도 했다.
이번 예산안 확정은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 최장 지각 처리다. 법정처리 기한(2일)을 3주도 더 넘겼다.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의 규모는 638조7,276억 원이다. 9월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639조419억 원)보다 3,142억 원이 줄었다. 국회가 정부안에서 약 4조2,000억 원을 삭감하고, 야당이 주장한 예산 약 3조9,000억 원을 끼워 넣은 영향이다. 총지출 규모가 국회 심사 과정에서 순감으로 전환한 건 2020년도 예산안 이후 3년 만이다.
국가채무는 정부안보다 약 4,000억 원 줄었다. 관리재정수지와 통합재정수지는 정부안 수준을 유지해 '건전 재정' 기조는 지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국가채무는 정부안 1134조8,000억 원보다 4,000억 원 감소한 1134조4,000억 원으로 전망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정부안과 같은 49.8%를 유지했다. 출범 전부터 재정 건전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 윤 정부가 총지출 순감,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 축소 등을 통해 건전 재정 기조를 지킨 셈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예산안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과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복합 위기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면서도 민생 안정과 경제 활력을 지원하기 위한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 경제 예산이 확대되고 불합리한 정부 예산이 삭감됐다"고 자평했다.
정부는 27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2023년도 예산안의 국회 증액에 대한 동의 및 예산공고안'과 '2023년도 예산 배정계획안'을 상정·의결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9월 2일 총수입 625조9,000억 원, 총지출 639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