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월드컵'이라더니... 카타르, 끝이 좋으니 됐다?

입력
2022.12.24 14:30
개최시점·국가 규모·술과 복장 규제 등 '이질적' 월드컵
경기력 개선, 축제 분위기 등 전화위복으로 작용한 측면도
이주노동자 권리 등 카타르 자체의 문제는 남아

뇌물 수수와 유치 비리 의혹, 국제 인권단체의 외국인 노동자 착취 문제, 술과 노출 금지 등 일상적인 '규정'까지. 카타르 월드컵의 시작은 온갖 '논란'이었다. 개막 전날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하루 3시간 맥주를 안 마셔도 살 수 있다. 맥주 없이도 월드컵 관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가 조롱을 당한 장면은 화룡점정이었다.

이런 월드컵도 아르헨티나의 우승과 리오넬 메시의 '축구의 신' 등극, 상대적 '언더도그(약체)' 모로코의 아프리카 팀 최초 4강 진출 등으로 화제를 뿌리면서 큰 성공을 거두고 끝났다. 이러니 당초 부정적인 이유로 꼽았던 요인들도 정작 뚜껑을 열고 나니 다소 이질적이었을 뿐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겨울 월드컵: "시즌 중이라 힘들어" → "경기력엔 더 낫다"

기존에는 여름에 펼쳐지던 월드컵이 이번 대회에선 카타르의 뜨거운 날씨 때문에 겨울로 그 시점을 옮겨야 했다. 이 때문에 가을에 시작해 봄에 끝나는 대부분의 유럽 리그 한가운데서 대회가 열리자, 볼멘소리가 나왔다. 프랑스는 카림 벤제마와 은골로 캉테 등이 부상으로 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대회 내내 검은 마스크를 쓰고 대회에 임한 손흥민처럼 크고 작은 부상을 안은 채 뛰는 선수들도 많았다.

확실한 것은 여름에 열리던 다른 월드컵에도 부상자와 평소 실력을 내지 못한 선수는 늘 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월드컵 경기를 분석하는 FIFA의 기술연구그룹(TSG)은 이번 월드컵의 경기력이 다른 대회에 비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면서 그 요인 중 하나로 '시즌 중 개최'를 꼽았다. 각국의 주요 리그에서 경기력을 담금질하고 오니 선수들의 몸 상태가 좀 더 좋았다는 것이다. 잉글랜드의 주장 해리 케인도 "여름 토너먼트보다 건강해진 느낌이었다"며 비슷한 의견을 냈다.


도시 월드컵: 수용 능력 있을까? → '지구촌' 된 도하

총면적 1만㎢ 남짓인 카타르는 역대 월드컵 개최국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다. 주민의 80%가 수도인 도하에 모여 살고 국토 대부분이 사막지대인 '사실상 도시 국가'다. 외부에선 단번에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수백만 팬을 맞이할 수 있을지 의심을 던졌다. 그나마 꼽힌 장점이라 한다면 반경 1시간 남짓한 거리의 경기장 사이에서 다양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 카타르 월드컵은 거대한 '문화 용광로'였다. 올림픽처럼 하나의 도시에 다양한 팬들이 모여들어 늘 축제 분위기였다. 도하 시내의 장터이자 팬들의 모임 허브가 된 수크 와키프 장터에서는 늘 드럼이 주도하는 행렬을 중심으로 색색의 경기복과 응원복을 입은 팬들이 몰려들었다. 영상 플랫폼 틱톡에서는 '적성국'이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미국 팬이 함께 어울려서 춤을 추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이번 월드컵은 남미와 유럽 중심의 기존 축구팬들 외에도 아랍 세계와 북아프리카의 팬들을 대거 월드컵에 끌어들였다는 의미도 있는데, 특히 모로코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차례로 꺾고 4강에 진출해 선전하면서 그 열기가 절정에 달했다. CNN에 출연한 모로코 팬 우마이마 아말라는 "정치적, 역사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랍과 아프리카의 무슬림이 서로를 형제 자매처럼 사랑하고 모두가 우리를 자국 팀처럼 응원해 준다"고 말했다.


논알콜 월드컵: "술은 월드컵의 일부" → "오히려 안전"

카타르에선 법적으로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실 수 없다. 자연스레 이번 월드컵도 '논알콜 월드컵'이 됐다. 경기장의 일부 지정된 권역에서나마 술을 팔고 소비할 수 있었던 것조차 막판에 원천 금지로 돌아서면서 FIFA가 카타르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많은 팬들이 술을 마시며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즐기긴 하지만, 취한 팬들은 과격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고, 팬들 간 충돌과 폭력 사태로까지 번질 여지도 충분히 있다. 이 때문에 기존에도 몇몇 대회에서는 경기장의 술 반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독일 팬 크리스티안 코파치는 대회 시작 1주일째인 지난달 29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에서도 종종 경기에서 술을 금지하기 때문에 술 없는 월드컵이 큰 변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팬 사이 있었던 작은 충돌 외에 폭력 사태에 대한 보고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며 "좀 더 평화롭다"고 평가했다.

카타르 관영 매체인 알자지라는 "경기에서의 술 부족과 같은 우려 사항도 축구를 즐기는 방법에 대한 특정한 서구적 견해를 반영한 것"이라면서 "맥주가 없는 것이 여성과 가족 등 다양한 관람객의 출석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노출 복장: "체포되는 것 아니냐"는 말만 많았다

최초의 무슬림 세계 월드컵으로서 카타르 월드컵은 '노출'에 대한 우려도 불러일으켰다. 카타르는 공공장소에서 여성이 가슴과 배, 어깨와 무릎을 노출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카타르가 노출에 강경하게 대응할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방문객들은 대체로 카타르의 당국자들이 정중하게 복장 관리를 요구받았다는 감상을 남겼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결승전에서 맨가슴을 노출해 화제와 비판을 동시에 불렀던 아르헨티나 팀 팬 노에 로페스와 밀루 바비는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졌지만, 따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로페스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무사 귀국을 알리면서 "생애 최고의 여행을 마쳤다"고 밝혔다. 비판 여론에는 "챔피언은 원하는 대로 축하할 수 있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대회 중 관중석에서 크로아티아를 응원했고 노출 많은 복장으로 국제 스타덤에 오른 모델 이바나 크놀은 "내가 비키니를 입는다고 해서 누굴 해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법의 한계'를 시험했다. 실제로 경기장 보안요원이 그와 팬들이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제지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공권력 차원의 처벌은 없었다. 크놀은 "내 복장을 문제 삼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다"면서 "기본적으로 정부 건물만 아니면 내가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다"고 밝혔다.


패턴이 된 '스포츠워싱'

대회 이전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의구심의 시선이 과도하거나 부당한 비판으로 드러난 것도 많다. 그러나 논란이 됐던 문제 중 일부는 사라지지 않았다. 성소수자 방문객이 차별받지 않았지만 카타르에서 동성애는 여전히 불법이다. 카타르 노동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이주민 노동자의 권리 침해 문제 또한 해소되지 않았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는 최근 국제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독재국가나 사회보수주의적 국가에서 개최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월드컵은 러시아에서 개최됐고 올해 동계 올림픽도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개최 비용이 치솟으면서 서구 국가들은 대회 개최를 꺼리지만 이들 국가에선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국내외의 정부에 대한 비판을 느슨하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일명 '스포츠워싱'으로 불리는 현상이다. 대회 전에는 문제가 됐던 요소들은 대회가 시작되면 경기와 선수 활약상에 관심이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잃을 수밖에 없다.

카타르 현지에서 활동한 팬들은 월드컵에 대체로 만족하며 떠났다. 하지만 영국 '이브닝스탠더드'는 "월드컵 기간 카타르의 거의 모든 영역이 친절한 노동자와 자원봉사자로 채워져 있어, 카타르 원주민과 접촉하거나 "진짜" 카타르로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논평했다.

인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