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여신은 왜 버림받은 버들아기가 되었나?

입력
2022.12.24 04:30
13면
<99>경계에서 흔들리며 변화를 향해 나가자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에는 마법사들이 버드나무를 통해 다른 마을로 이동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마녀들이 악마를 만나기 위해 커다란 버드나무 둥치로 드나든다고 생각한 중세 유럽인의 믿음을 반영한 부분이다. 마법 세계와 현실 인간 세계,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버드나무가 한다고 믿은 이유는 뭘까?

버드나무는 강가나 습한 지역에서 자라기에 물과 대기(大氣) 사이에 걸쳐 있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변화를 보여주기에 겨울과 봄 사이에도 걸쳐 있다. 나무를 숭배하던 고대인들이 버드나무를 변화의 경계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이유다. 그래서인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묘사된,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길에는 버드나무 숲이 있다. 이때 버드나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신화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버드나무는 삶과 죽음이란 두 세계를 오가며 변화가 생기게 한다. 해열제 '아스피린'은 열을 내리게 하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를 달여 마시던 민간요법에서 유래한다. 이 사실이 흥미롭게 반영된 캐릭터가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에 등장하는 버드나무 할머니다. 포카혼타스는 버드나무 할머니의 나무껍질에서 만든 약을 받아와서 존 스미스에게 준다. 버드나무 할머니는 포카혼타스에게 조언을 해주는 버드나무의 정령인데, 여기서 '할머니'는 꼭 나이가 많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제주도의 '할망'처럼 여신을 뜻하기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버드나무는 인간에게 없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이야기에 등장한다. 주로 서양에서는 마녀로, 동양에서는 여신으로 그려진다. 만주족의 창세 신화인 '천궁대전'에 의하면, 세상을 창조한 신은 버드나무 여신 '아부카허허'였다. 그래서 지금도 만주에는 물과 생명을 상징하는 버드나무를 숭배하는 풍습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러나 신화 속 창조 여신의 능력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점 축소된다. 가부장 권력에 굴복하여 남성 천신의 배우자가 되어 남성 영웅을 돕는 일 위주로 능력을 발휘한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건국신화를 보자. 청 태조 누르하치가 버드나무 여신인 푸터 할머니에게서 도움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만주의 버들여신 숭배는 천손강림 모티프와 난생 모티프와 결합되어 고구려 건국신화에도 영향을 준다. 이규보(李奎報)의 서사시 '동국이상국집' 권3 '동명왕편(東明王篇)'을 보면, 동명성왕(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柳花夫人)은 부여에서 동명성왕이 탈출하여 고구려를 건국하게 도와준다. 그 업적을 인정받아, 유화는 부여 땅에서 죽었지만 고구려 사람들에게 동명성왕과 함께 조상신으로 숭배받았다.

고구려 건국 신화 속 유화부인에게는 신화적으로 여러 신들의 역할이 겹쳐 있다. 물가에 자라는 버드나무가 이름이며 강의 신인 하백의 딸이라는 점에서는 물과 생명의 신, 주몽이 명마를 미리 준비하여 훗날에 대비하도록 한 장면에서는 유목민족의 신, 오곡의 종자를 비둘기편에 주몽에게 전해준 대목에서는 농경민족의 신이란 모습이 보인다. 유화, 즉 버들꽃이란 이름 그대로 물, 변화, 생명을 주관하는 버들여신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보인다. 천덕꾸러기에다가 잠재적 왕위찬탈자 취급을 받던 마구간지기 주몽을 왕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버들여신의 능력이다. 바로 겨울에서 봄으로 바꾸는 능력.

유화부인과 같은 버들여신 캐릭터는 우리 역사와 설화에서 계속 등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이 보인다. 경계에 걸쳐 있어서 변화를 만드는 창조 여신의 역할이 이야기에서 점점 축소된다. 건국 성모에서 남편의 출세를 돕는 여자로, 능력만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여자로 후대로 내려오면서 바뀌어 가는 현상이 생긴다.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천명한 나라, 고려 태조 왕건 설화를 보자. 왕건이 버들잎 띄운 물그릇을 건네준 지혜로운 버들아씨를 후궁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곳곳에 전해진다. 왕건이 지방 호족과 결혼동맹을 맺어 왕위를 얻은 과정을 반영하는 설화다. 왕건의 버들아씨 중 가장 유명한 이는 나주 호족의 딸인 오씨다. 나주를 지나던 왕건이 갈증이 나서 버드나무 아래 우물로 찾아간다. 물을 긷고 있는 아가씨에게 물 한 그릇을 청하자 아가씨는 물을 담은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 준다. 이유를 묻자 목이 마르다고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하는 법이라고 아가씨가 답한다. 이에 반한 왕건은 아가씨의 집을 찾아가 청혼한다. 이 설화 속 버들아씨는 왕건의 제2왕후인 장화왕후 오씨다. 고려 제2대 왕 혜종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왕건의 설화에서, 마구간지기를 왕으로 만들고 농경문명을 고구려에 전해준 버들여신은 고려 시대에 들어서는 친정의 힘을 이용해서 남편을 성공시키는 인간 아내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를 돕는 여신의 근본적 능력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둘째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를 만나는 장면도 같은 버들아씨 유형 설화로 전해진다. 고려의 장화왕후와 조선의 신덕왕후는 각각 나라를 세운 시조의 두 번째 부인이다. 둘 다 세력 있는 호족의 딸이기에 남편을 더 높은 단계로 변화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 민간에 널리 알려진 버들아씨 설화를 왕비와 연관지어 이용하는 것은 왕이 첫 부인을 두고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는 이유를 정당화하고, 왕비의 친정 세력이 개국 과정에서 세운 공을 부각시킨다. 개국 군주의 다음 후계자가 그 왕비의 소생이 되길 바란다면, 이런 설화로 포장하는 작업은 더더욱 중요하다.

꼭 왕의 경우에만 버들잎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연산군 시절 홍문관 교리 이장곤이 귀양길에 도망 치다 백정의 딸과 만나 결혼한 실화에도 지혜로운 버들아씨가 등장한다. 이장곤은 중종반정으로 신분이 복귀된 후에 아내를 정실로 삼았다. 남편의 신분 하락과 복권, 그 과정에 아내가 기여한 바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백정의 딸을 변화를 가져오는 설화 속 버들아씨로 미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버들아씨들이 이장곤의 아내처럼 사랑의 보답을 받은 것은 아니다. '천안삼거리 흥~ 능수양 버들은 흥~' 하는 민요로 유명한 천안의 버들아씨 설화를 보자. 이 민요의 주인공은 삼거리에 살던 버들아기인데, 사랑하는 총각이 한양에 과거 보러 가서 급제 후 돌아오지 않자 상사병으로 죽는다. '사랑하는 총각이 과거에 급제했다'는 대목에서 고대 버들여신의 본래 모습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상대를 변화시키는 능력 말이다.

천안의 버들아씨 설화에는 다른 버전도 있다. 현재 천안에서 공원을 조성하며 내세운 이야기는 기생 능소와 선비 박현수가 주인공이다. 이 경우는 해피엔드다. 둘은 재회한다. 능소가 박 선비를 기다리며 심은 길가의 버드나무는 능소의 버들이라 불리다 지금의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이 된다.

역사와 설화를 읽고 공부할수록 이상한 점이 보인다. 여성과 관련된 부분은 본래 모습과 다르게 후대로 내려올수록 의미가 축소되고 위상이 격하되곤 한다. 창조 여신 아부카허허는 아들을 왕으로 만든 유화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을 왕으로 만든 버들아씨를 거쳐 끝내 남자를 성공시켰지만 버림받은 버들아기가 된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신화의 시대가 끝나서 버드나무에 대한 민간 신앙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니다. 이는 사회의 문제를 반영한다. 능력 있는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여성은 가진 자원과 능력을 가족이나 주변 남성을 성공시키고 뒷바라지하는 데에 써야 인정받는 사회, 자아실현하는 삶보다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것이 여자의 행복이라고 세뇌하는 사회, 남성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버림받은 것이라며 인생 낙오자로 몰아가는 사회. 그리하여 남성의 사랑을 얻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고 희생하다 자신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같은 여성까지 적으로 돌리게 만드는 사회, 이 성차별 사회의 문제다.

성차별 사회는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남성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발휘하며 살아가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런 고대 여신 이야기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연말이고 올해 마지막 이야기이기에 이번 글은 한 해 동안 힘들게 싸워온 여러 분야의 친구들을 위해 쓴다. 우리, 새해에도 세상의 모든 경계에서 흔들리며 같이 가 봐요.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포기하지 말아요.

박신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