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붕어빵은 어디로?... '붕세권' 유행에 가려진 눈물

입력
2022.12.25 07:00
N면
겨울철 대표 길거리 간식, IMF 사태 '경기 불황' 지표로도 
원재룟값 상승에 코로나19 노점상 영업 직격탄 맞으며 '실종' 
'탈세·불법' 낙인찍힌 노점상들, 합법화 요구하며 입법 청원도

"OO역 근처 붕어빵 파는 데 있나요? 카페 붕어빵 말고 '팥붕'이 먹고 싶습니다."

"OO 초등학교 붕어빵 아저씨 계속 안 나오시나요? 붕어빵 요즘 정말 귀하네요."

겨울철 출출함을 달래주던 대표 길거리 간식, 붕어빵이 멸종 위기다. '오다가다 우연히 마주칠 수 있겠지'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가는 허탕 치기 십상. 작정하고 발품을 팔아야만 겨우 '알현'할 수 있는 귀한 몸이 됐다. 붕어빵을 찾아 동네방네 헤매는 사람이 늘면서 근처 가까운 곳의 붕어빵 노점 위치를 알려주는 전용 어플(대동풀빵여지도, 가슴속3천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MZ세대 사이에선 붕어빵 노점 인근에 사는 게 동네 프리미엄이라며 '붕세권(붕어빵+역세권)'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흔하디 흔했던 붕어빵은 어쩌다 '레어템'으로 등극했을까.

"붕어빵에 붕어 없고, 희망퇴직엔 희망 없다" 서민 애환 달래주던 '솔푸드'

붕어빵은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름 족보 있는 음식이다. "모계는 서양의 와플, 부계는 동양의 만두"('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윤덕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일본의 '다이야키'(도미 모양으로 구운 빵)가 시초다. 1930년대 국내로 유입되며 붕어빵이란 이름을 얻었고, 1950년대 미국 곡물 원조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겨울철 대표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엔 밀가루를 풀 반죽처럼 묽게 만들어 구운 수준으로 이때만 해도 속에 들어가는 팥 앙금은 없었다. 소금만 뿌려 먹었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붕어빵은 허기를 채워주는 한 끼 식사 대용이었다. 전태일 열사는 돈이 없어 점심을 굶고 일하던 어린 여공들을 위해 차비를 헐어 붕어빵과 비슷한 풀빵을 사 먹였다. 지난 대선, 정의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심상정 의원이 붕어빵 탈을 쓰고 나와 전태일의 '풀빵정신'을 이어가겠다며 노동자들의 표심을 공략했던 배경이다.

잠시 퇴출된 적도 있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미관을 해친다며 정부가 노점상 단속에 나선 탓이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 사태를 거치며 부활을 알렸다. 경제 불황이 심해지면서 늘어난 실업자들이 초기 자본이 적은 붕어빵 장사에 많이 뛰어들면서다. 정리해고 칼바람이 불어닥치던 시기 "붕어빵에 '붕어' 없고, 희망퇴직엔 '희망' 없다"(현대자동차 노조)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이때부터 붕어빵이 잘 팔린다는 건 그만큼 먹고살기 힘들다는 뜻으로 불황의 지표로 통했다.

원재룟값 5년 전보다 평균 50% 올라... 1,000원에 2개가 기본 시세

요 몇 년 사이 길거리에서 붕어빵 노점상을 찾기 어려운 건 고물가 탓이 크다. 붕어빵의 주재료인 밀가루 팥 설탕 가격이 모두 급등하며 수지타산을 맞추기 쉽지 않아진 것. 한국물가정보가 붕어빵에 들어가는 주재료 5가지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5년 전보다는 평균 49.2%, 지난해보다도 18.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속 재료로 많이 사용되는 붉은팥 800g 평균 가격은 6,000원으로 5년 전(3,000원)보다 100%, 지난해(5,000원)보다는 20% 올랐다. 밀가루(중력)도 1kg 가격이 1,880원으로 5년 전보다는 46.9%, 작년보다는 18.2% 인상됐다. 설탕과 식용유, LGP 가스 가격도 5년 전보다 각각 21.5%와 33.2%, 27.4% 상승하는 등 안 오른 품목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러다 보니 1,000원에 4, 5개를 한 봉지에 꽉 채워주던 후한 붕어빵 인심도 옛말이 됐다. 이제는 1,000원에 2개가 기본이고, 강남 등 지역에 따라선 1개에 1,000원인 곳도 있다.

붕어빵 '실종'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도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유동인구가 줄어들면서 직격탄을 맞은 노점상들이 아예 장사를 접는 경우가 많아진 것. 거리 질서 유지를 위해 지자체가 단속을 강화하고 나선 것도 요인이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지난해 9∼10월 민주노점상전국연합과 전국노점상총연합에 가입한 노점운영 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에 참여한 106가구 중 96.2%가 코로나19 시기 동안 노점 운영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거리 노점상은 2019년 6,296개, 2020년 6,079개, 2021년 5,762년, 2022년 상반기(1~6월) 5,684개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거리 노점상은 '특수 자영업자'로 분류돼 정부 정책에서도 사각지대다.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임의로 영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부의 체계적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탈세·불법' 낙인도 부담... 노점상들 "세금 내고 합법적으로 장사하게 해달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대상 손실보상금 제도가 시행됐지만 노점상은 예외였다.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50만 원을 지급하는 '노점상 소득안전지원자금'이 있었지만, 설문조사 결과 신청 비율은 26.7%로 저조했다. "신청 자격 조건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신청했을 경우 신분 노출로 인해 이후 단속이나 과태료 부과에 악용될 것을 염려하는 노점상이 다수"(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였기 때문이다.

'세금도 안 내고 장사한다'는 '불법' 낙인도 영업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월수입만 수천만 원, 노점상인들 억대 벤츠 끌고 퇴근한다'는 말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댓글 등에서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노점상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정작 노점상들은 합법화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월 국회에 제출한 '노점상생계보호특별법' 제정 입법 청원은 그 시작이다. 세금 다 낼 테니 떳떳하게 영업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핵심 요구다. 현행 각종 세법은 노점상에게 세금계산서와 영수증 발급 의무 없이 면세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탈세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노점상들도 세금을 낼 테니, 그에 맞게 법을 제정하고 불법의 낙인을 없애 달라!"(지난 9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 제정 촉구 결의대회)

겨울 한철 장사도 마다한 채 노점상 주인들은 붕어빵 기계 앞 대신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피켓을 들고 섰다. 청원 안은 국민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지난 9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입법까지는 첩첩산중이다.

단속에 내쫓기고, 재룟값 폭등에 허덕이고, 때로는 날 선 비난에 서러웠던 길거리 노점상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붕어빵의 진짜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강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