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전문가들이 부가가치세를 인상하고 그중 일부를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해 쓰자는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연금기금 고갈로 '성실히 납부해도 못 받는다'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돼 세대 간 형평성도 높일 수 있다는 찬성 의견과 함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 개혁 자체를 방해할 수 있다는 반박도 나왔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연구원은 21일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 제12차 전문가 포럼을 열고 '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한 국고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부가세 활용' 아이디어가 나온 건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2060년 전후 현 청년층의 부담은 지나치게 커지는 반면, 국가가 연금 지급을 책임지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기금 고갈 이후 가입자가 낼 보험료율을 최소 30%로 올려야 연금 제도가 지속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 보험료율은 9%다. 2070년 국가 채무 비율이 192.6%로 오를 것이란 전망치도 나온 바 있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박명호 홍익대 교수는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최근 '기금 소진 시 국가가 메워 지급하면 된다'고 했는데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러려면 일반 재정을 공적 연금에 투입해 국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취약계층의 보험료를 지원하기 위해 기금에 재정을 붓고 있다. 지난해 기금 수입 중 24%는 연방정부의 보조금이었다. 미국은 기금에 소득세 일부를 지원하고, 연금 재정 손실분을 정부 재원으로 채운 적도 있다.
많은 세원 중 부가세를 제시한 건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그나마 적기 때문이다. 전영준 한양대 교수는 "법인세나 소득세와 달리 부가세는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덜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실제 부가세를 올려 연금에 쓰고 있다. 2019년 8%였던 부가세율을 10%로 인상하면서 일부를 연금 소득 재분배 자원으로 쓴다. 박 교수는 부가세를 인상하되 인상분을 '사회보장세'로 정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에 폭넓게 활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다만 지원 범위는 연금의 소득 재분배 부분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재정 투입을 무한대로 할 수 없고, 가입 기간·납부액에 비례해 받는 연금 성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재정 부담 탓에 (국고 지원이) 제한된다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의 노후소득 보장에 주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도 "크레딧(가입 기간 인정 지원 제도) 부분에 대해선 당장이라도 국고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연금 제도를 성숙하게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 등 유럽은 제도가 성숙한 단계에서 지급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투입한 것"이라며 "연금 제도를 지속 가능하도록 바꾸는 게 우선인 상황에서 개혁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도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 문제를 고려한 뒤 (국고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며 "낮은 보험료율을 올리는 게 제도 개선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부가세 인상 활용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이스란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오늘은 다양한 의견을 두고 토론하는 자리로 정부가 제시한 안이 아니란 걸 강조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