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밤에 당직 혼자 서면 무섭고, 고됩니다."
"이런 게 차별이라면 남녀 고용 불평등, 임금격차 문제는요."
남자 직원만 야간 숙직에 투입하는 게 차별이 아니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둘러싸고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뜨겁다. 남성 누리꾼들 사이에선 역차별이란 반발이 거세지만, 과도하게 남녀 갈등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8월 농협 은행 IT센터의 직원이 당직 근무 편성 때 여직원에게는 주말과 휴일 일직을, 남직원에게는 야간 숙직을 전담토록 하는 것이 남성에 대한 불리한 대우에 해당하고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며 진정을 냈지만, 인권위는 최근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가 당직 근무 상황을 성차별까지는 아니라고 본 가장 큰 이유는 남녀 업무 강도에 크게 차이가 없다고 봐서다. 해당 기업은 남직원은 야간 숙직을, 여직원에게는 주말·휴일 낮 일직을 부여하고 있다. 인권위는 "야간 숙직의 경우 한 차례 순찰을 하지만 나머지 업무는 일직과 비슷하고 대부분 숙직실 내부에서 이뤄지는 내근 업무여서 특별히 더 고된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보상이 주어지는 점도 고려됐다. "야근이 휴일 일직보다 6시간 정도 길지만 중간에 5시간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고 4시간의 보상 휴가도 주어지기 때문에 현저히 불리한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전 문제도 변수가 됐다.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들은 폭력 등의 위험 상황에 취약할 수 있고, 여성들이 야간에 갖는 공포와 불안감을 간과할 수 없다"는 걸 감안하자는 취지다. 이 같은 이유로 인권위는 "여성에게 일률적으로 야간 숙직 근무를 부과한다면 매우 형식적이고 기계적 평등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남성만 야간 숙직을 서는 상황 자체가 근본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여성을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성차별적 인식을 강화해 여성을 배제하는 논리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여성 근로자들의 의견 수렴과 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효율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여성 직원 수가 증가하고 보안 시설이 발전하는 등 여성들이 숙직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면 성별의 구분 없이 당직근무를 편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인권위의 최종적인 결론이다.
하지만 남성 누리꾼들 사이에선 반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남성 이용자가 많은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 관련 소식이 올라오자 "공포심이 성별 따라 오느냐", "숙직이 현저히 더 어렵지 않다면, 여성도 같이 하면 되지 않느냐" 등 인권위 결정을 비판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논쟁은 장외로도 불붙었다. 김원재 성인권센터장은 2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깔려 있다'며 인권위 결정을 비판했다. 인권위가 지적한 여성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데이터를 관리하는 IT 전산센터 특성상 폭력 등에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찬성하는 쪽에선 "남녀의 신체적, 사회적 조건의 차이를 마땅히 고려한 판단"이라며 맞섰다. 최미진 노동자연대 기자는 "현실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민원인들로부터 괴롭힘이나 공격을 당할 확률이 높고, 성추행 성폭력 위험에도 노출되기 쉬운 구조를 간과한 채 (이를 해소하는) 대책 없이 숙직을 강요하는 것은 여성 노동자들이 이미 겪고 있는 각종 차별의 부당함을 더 강화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최 기자는 야간 숙직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결정이 오히려 여성의 업무 범위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여성 차별 아니냐는 김 센터장의 지적에 "여성을 보호 대상으로 취급하는 성차별적 관념에서 나온 결정이 아니라고 인권위도 짚었다"며 "(여러 차이와 현실을 외면한 숙직 강요가)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진정한 평등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되받았다. 또 남녀가 대립하며 서로 부담을 떠넘기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사측에 인력 충원을 통해 야간 당직 폐지를 요구하는 쪽으로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