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죽인, 나쁘고 비통한 어머니를 양산하는 사회

입력
2022.12.21 19:00
25면

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교환가치 떨어진 환우를 돌보지 않는 사회구조
오랜 간병의 긴 '그림자 노동'으로 촉발된 간병살인
세계 1등 고령화 한국, 간병살인 막는 제도 정비 시급

한 60대 여성이 30대 여성을 수면제를 먹여 살해하였다. 가해자는 아직 재판을 받고 있으나,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는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왜 사람을 죽였으며, 어떠한 엄벌을 받아야 할까.

이 사건의 내막을 들추면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 그리고 범행 목적에 보통의 살인사건과 다른 특수한 상황이 개입된다. 하나는 피해자가 본인의 딸이라는 점, 또 하나는 그 딸이 38년 동안 누군가의 뇌병변 1급 중증 장애인이었다는 점이다. 뇌병변 장애는 뇌의 기질적 손상으로 인한 장애로 보행 또는 일상생활의 활동에 현저한 제약을 받는다. 흔히들 알고 있는 뇌성마비, 파킨슨병 등이 이에 속한다. 그중에서 1급은 양쪽 팔의 마비로 이를 이용한 일상생활 동작을 거의 할 수 없어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이다. 38년 동안 딸을 간병해 온 엄마는 왜 살인자가 되었을까? 엄마는 딸이 대장암 진단을 받으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감정은 물론 가사 경제도 무너지기 시작한다. 엄마가 무너지면 딸은 어떻게 될까? 본인이 죽으면 딸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나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큰 결단을 내렸다. 그녀의 살인은 다른 충동적인 살인과 다르다. 간병에 지친 가족의 살인, 간병살인이다.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

2017년 일본에서 출간된 책 제목이다. 일본의 한 방송국에서 간병살인에 대한 특별취재 이후 간병살인 가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책이다. 그 책은 더는 간병살인이 특정 가족의 문제가 아님을 호소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신문기사를 분석한 조사는 1998년에서 2015년까지 간병살인으로 724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하였다. 이는 연간 40여 건에 해당하며, 1, 2주에 한 번씩 간병살인이 발생하는 셈이다. 간병살인 피해자의 80%가량은 여성이었다. 남편이 부인을 살해한 경우는 33.5%,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경우는 32.8%였다. 가해자는 72%가량이 남성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티 나지 않는 그림자 노동을 하고 있었다. 긴 간병의 과정에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폭언이 오가고, 경제 문제가 동반되며, 노부부 사이의 간병은 간병자살로도 이어진다.

간병살인이 발생하는 원인은 환자의 교환가치와 간병자의 스트레스 측면에서 설명한다. 사회에서 교환가치가 떨어지는 환우에게 사회는 돌봄 투자를 하지 않는다. 동시에 간병자는 긴 그림자 노동에 좌절과 무기력을 느끼게 된다. 그 긴장은 해소의 출구 없이 누적되면서 폭력과 살해로 넘어간다. 문제는 사회가 이러한 현실의 위험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외면한다는 점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가해자인 딸을 죽인 어머니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하였다. 그러나 간병살인자, 과연 이들이 사회적 격리가 필요한, 엄벌로써 다스려야 할 위험한 살인자일까? 간병살인자들은 살기 위해 살해하였고, 때로는 죽기 위해 살해하였다. 개인의 삶은 없고 간병만 남았으며, 환자만 남겨둘 수 없기에 같이 떠나는 결론을 내렸다. 삶을 던져야 하는 간병을 가족이 오로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환자를 둔 가족에 대한 제도, 노인에 대한 사회적 제도의 미비가 살인자를 계속 양산해내는 것이다. 간병살인은 사회 내 경제적 가치가 우선시되며 다른 제도의 불균형적 희생이 범죄를 야기한다는 로젠필드와 메스너의 제도적 아노미 이론이 쉽게 적용되는 예이다.

살인자가 필요한 사회는 없다. 이러한 불필요한 살인자는 복지 제도의 미흡으로 계속 생겨난다. 즉, 제도만 잘 갖춘다면 간병살인자를 양산하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사회제도가 고령자와 환우가 있는 가족의 삶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세계 1등으로 고령화 속도를 내고 있는 우리나라는 더욱 그 고민이 절실하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