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은 작가가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16세부터 19세까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세밀한 필치로 그려낸 글이다. 주인공의 큰오빠는 몇 년 전 이미 서울에 와있었다. 그는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야간대학 법학과에 다닌다. 작가는 오빠의 권유로 직업훈련원에 들어간다. 오빠는 16세의 어린 동생에게 말한다. “일이 힘들 거야. 그렇지만 그곳에서 연수를 받고 공단으로 취직을 하면 학교를 갈 수 있을 거다. 내년부터 산업체 특별학급이 생겼으니까.”
‘산업체 특별학급’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1976년 ‘교육법’ 개정에 따라 1977년부터 실시되었으며, 대부분 기존의 인근 중·고등학교에 야간으로 부설되는 형식을 취했다고 한다. 또 산업체 특별학급의 운영비 중 인건비는 사업체가 부담했으며, 졸업자는 일반 중ㆍ고등학교 졸업자와 동일한 학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외딴방’의 주인공은 같이 상경한 세 살 위 외사촌과 함께 직업훈련원을 마친 후 ‘ㅇㅇ전기주식회사’에 취직해 일하면서 영등포여고의 산업체 특별학급에 다닌다. 3년의 과정을 마치고 19세에 대학에 입학하는 시점에서 소설은 끝난다.
소설의 주인공은 전철역 근처 공동주택에서 큰오빠, 외사촌과 함께 생활한다. 공동주택에는 37개의 비좁은 단칸방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주인공을 비롯한 3명의 생활공간이다. 공동주택에는 입주민들이 빨래를 하기 위해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돗가가 있었고, 남녀 각각 단 한 개씩의 화장실이 있었다. 아침마다 입주민들은 줄을 서서 화장실을 차례로 사용한다.
당시 주인공의 직장이 있던 곳은 구로공단이었다. 구로공단은 1960년대에 정부가 본격적으로 수출진흥정책을 추진하면서 조성한 수출산업공단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약 11만 명이 이곳에서 종사하고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이 1979년에 이곳에 취직했으니 주인공도 11만 명 중 한 명이었던 셈이다. 당시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노사분규도 적지 않게 발생했는데, 소설에도 곳곳에 노사갈등이 묘사되어 있다. 이후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구로공단은 첨단산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지금은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구로구의 구로디지털단지 및 금천구의 가산디지털단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외딴방’의 16세 소녀와 같은 근로자, 특히 여성 근로자들이 우리 경제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너무나 컸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60년 약 120만 원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약 3,700만 원으로 32배 증가했다(2015년 불변가격 기준). 또 일자리는 1963년 약 750만 개에 그쳤으나 2021년에는 약 2,700만 개로 3.6배 늘어났다. 이러한 눈부신 경제성장은 열악한 환경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근면성실하게 일했던 많은 근로자 덕분이었다. 사실 이들에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절대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부모와 형제를 돌보기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고된 노동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외딴방’에서도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은 모두 ‘공원(工員)’이라는 명칭에서 탈출하기를 꿈꾼다. 주인공은 결국 작가가 되는 꿈을 이루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처럼 빠른 경제성장과 대규모 일자리 창출에 성공한 나라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저소득 또는 중소득 국가였던 나라 중 고소득 국가로 올라선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에 불과하다. 다른 많은 개발도상국은 여전히 저소득 또는 중소득 국가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성공은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나라의 성공을 가능케 했을까?
그 첫째 요인은 아마도 수많은 근로자의 더 잘 살고자 하는 열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참고 견디었던 근로자의 근면성실함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다음 둘째로 꼽아야 할 것은 기업가이다. ‘외딴방’에서 ‘ㅇㅇ전기주식회사’의 사업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를 대리하는 중간간부들만 나타난다. 이들은 대개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사업을 벌여 공장을 세우고 일자리를 제공한 기업가들의 역할도 간과할 순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기업가들이 공장을 세운 것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함이었지 근로자들을 위함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근로자에게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가혹하게 일을 시킨다. 그러나 이들이 없었다면 일자리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 역시 명확하다. 실제로 소설의 말미에는 수출이 끊겨 일감이 없어지면서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불안해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들은 작업대를 잃고 서성거리며 퇴직금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기여한 세 번째 요인은 정부의 실용주의적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수출만이 살길임을 인식하고 수출진흥에 모든 것을 건다. 과거 중남미 국가나 다른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수출산업보다는 내수산업을 일으켜 성장을 도모했던 것과 반대다. 이들 나라는 결국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와 대외부채 누적으로 경제위기를 겪게 된다. 내수시장만을 상대하다 보니 기업들이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세계 굴지의 수출기업들을 키웠으며, 이들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개발에 매진한 결과 생산성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정부는 수출진흥정책을 펼치면서 동시에 인력 공급을 위해 교육 기회를 대폭 넓혔다. 소설에서 언급되는 직업훈련원의 설치와 산업체 특별학급의 도입이 그러한 예인데, 당시 정부의 노력은 가히 전방위적이라 할 만하다. 더불어 공장이 있는 도시에 근로자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생기는 주거문제, 교통문제, 위생문제 등 온갖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체계적으로 도시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갔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이런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나라는 보기 드물다. 독자들 가운데 개발도상국에 여행을 가본 분들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일자리 창출은 거의 모든 분야의 정책이 합심하여 이루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산업정책, 무역정책, 교육 및 훈련정책, 주택정책, 교통정책, 상하수도정책, 에너지정책 등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정책이 거의 없었다. 여기에 더해 근로자와 기업가 등 수많은 경제주체가 돈을 벌기 위해 피땀을 흘린 결과 빠르게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지속적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똑같은 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용·노동정책만 가지고는 일자리 문제를 풀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특히 중요한 질문은 빠르게 변하는 경제환경에 우리가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느냐다. ‘타다’의 예가 대표적이다. 기존 택시 업계의 반발로 ‘타다’의 영업행위가 불법이 되면서 우리는 택시 대란을 겪었다. 이제야 국회는 관련 법을 손질하겠다고 하는데, 일자리의 관점에서 보면 환경 변화에 거슬러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막았던 매우 안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타다’뿐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에서 똑같은 행태가 목격된다는 점이다.
구로공단을 디지털단지로 바꾸는 일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곳곳에 존재하는 걸림돌, 혁신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또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력을 배출하지 못하는 학교 교육을 개혁해야 하며, 경쟁력 없는 기업을 보호할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을 우대하는 방향으로 기업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인적·자원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는 여러 정책도 재검토해야 하고, 근로자 보호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주로 기득권을 보호할 뿐인 노동시장 법제도 현대화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양질의 일자리는 결코 만들어지지 못할 것이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