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춥지? 얼굴이랑 머리색이 다 바랬네."
18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참사 희생자인 이동민(32)씨의 아버지 이성기(63)씨가 아들 영정사진을 연신 옷소매로 닦았다. 참사 당일 아들이 찍은 사진으로 휴대폰에서 나중에 발견했다. 아버지에겐 아들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라 더없이 소중하지만, 연일 내리쬐는 햇빛과 거센 바람에 하얗게 바랬다. 이씨는 조금이라도 한기를 없애려고 영정사진을 매만지고 핫팩까지 뒀다.
이곳에 유족 주도 시민 분향소가 차려진 지 닷새가 지났다. 공교롭게 닷새 내내 한파가 몰아쳐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추모 발길은 계속되고 있다.
유가족협의회와 현장 자원봉사자에 따르면, 매일 200명 이상이 분향소를 찾는다. 분향소 설치 첫날인 지난 14일 추모객 200여 명이 다녀간 뒤, 매일 국화 200송이를 주문하고 있지만 그날 오후면 바닥난다고 한다. 토요일인 17일엔 100m 대기 줄이 생겼고, 체감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진 이날도 오전 11시부터 3시간 동안 110명의 시민들이 방문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핫팩'으로 추모의 뜻을 전하는 시민들이 많아졌다. 따뜻하게 데워진 핫팩을 24시간 분향소를 지키는 유족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건네거나 희생자 영정사진 옆에 둔다. 추모객 조모(47)씨는 "우리 자식들 먼 길 가는데 춥지 않아야 하는데…"라며 주머니 속 핫팩 두 개를 꺼냈다. 한 유족은 "추운데 와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며 조씨 손을 잡은 채 한참을 울었다.
시민 분향소를 애써 외면하는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과 원망의 목소리도 있었다. 유족 최행숙(61)씨는 "유족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대통령이 트리 점등식을 하면서 웃고, 동네에 떡을 돌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비통해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전날 참사 49일 시민 추모제 행사에는 불참한 채, 서울 도심에서 열린 '한겨울의 동행축제 윈·윈터 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한 걸 지적한 것이다. 최씨는 "대통령도 분향소를 찾아 정식으로 사과하고 추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용산구민 정은주(41)씨도 "대통령이라면 국민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하고, 적어도 공감하는 마음이라도 필요하다"며 "다른 나라 일인 것처럼 활짝 웃는 모습에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시민 분향소 바로 옆엔 한 보수단체가 설치해놓은 천막이 자리를 잡았고, '이태원 참사 추모제 정치 선동꾼들 물러나라'는 현수막이 펼쳐져 있었다. 추모객 김정현(28)씨는 "유족들이 매일 저 천막을 마주하면 속상하지 않겠느냐"며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혀를 찼다. 보수단체 대표는 "유가족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선동하는 이들에게 반발하는 것"이라며 "이곳 집회 신고는 우리가 먼저 했다. 빠른 시일 내에 분향소에서 철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측은 그러나 "안정적인 실내 추모 공간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시민 분향소를 당분간 유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