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고 유가족 지원 매뉴얼 있지만…2차 가해 방지책 빠지는 등 '허술'
국내 최악의 항공 사고로 기록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계기로 유가족 지원 매뉴얼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신원 확인과 조사단 구성, 유가족에 대한 명예훼손 예방 등에서 크고 작은 혼선이 확인된 만큼, 재발 방지를 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8일 국토부에 따르면 정부는 2005년 '항공기사고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을 수립해 활용하고 있다. 항공사고 발생 시 초동 조치, 긴급구조, 현장활동, 사고수습본부회의, 운항 대책과 관련한 국토부와 유관부처의 대응 지침이다. 국토부는 이번 사고 직후에도 해당 매뉴얼을 사고 수습에 활용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항공기 사고 발생 시 중요한 부분인 유가족 지원 항목이 다른 항공 선진국 대비 간략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매뉴얼에는 △유가족을 위한 임시 주거 공간 지원 △구호 물자 공급 △유가족 지원단 구성 후 1대 1 전담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반해 미국은 항공사고 유가족 지원을 아예 법제화해, △'비영리 독립단체'가 유가족과 소통 △유가족을 위한 '무료 전화' 창구 마련 및 홍보 △조사 중이라도 유가족이 요청한 유류품 반납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의 사고 조사기구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이 법령에 따라 유가족이 제기할 수 있는 주요 물음 4가지(탑승자 명단 포함 여부, 희생자 체크, 정보 및 물품 제공, 유류품 확인)를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최소 9개의 유관기관이 각각 조치하도록 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도 2022년 유가족 지원 중요성을 강조하며 각 회원국이 매뉴얼을 만들어 세분화할 것을 권고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 관계자는 "ICAO 표준에 맞춰 지난해 '항공기사고 지원 업무 표준 교안'을 만들었지만 국토부의 매뉴얼이 우선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참사 현장에서는 유가족 지원 측면에서 적잖은 잡음이 일었다. 사고 초기 단계에서 희생자가 명단 누락되거나 시신 수습 이후 신원 확인 절차가 복잡했던 점, 특정 언론에 승객 명단이 공개된 점 등이 논란이 됐다. 이후에도 유튜버의 무분별한 촬영이나 관계당국과 항공사 간 소통 문제가 드러났다. 유가족 측은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고 11일 총회를 열 예정인데, 결정 사항 등을 전달할 창구도 일원화돼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족이 강하게 촉구하는 조사기구의 공정성 확보방안도 매뉴얼엔 없다. 조사보고서를 심의·의결하는 사조위에서 국토부 인사를 배제했으나, 사조위와 실제 사고를 조사하는 조사단 자체가 국토부 소속이라는 점에서 유가족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미국은 NTSB를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운영하고 캐나다도 이를 독립 기관으로 설정하고 있다. 유가족을 향한 명예훼손 등 2차 가해를 사전 예방하는 내용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전날까지 내·수사 중인 악성 게시글만 176건에 달한다. 유가족 측 대리인인 김정희 변호사는 "유가족의 개인 정보 유출이나 악성 게시글 노출은 여전하다"며 "사고 발생 직후 관계기관과 포털사이트 등이 협업해 사전 차단할 수 있는 매뉴얼이 있다면 트라우마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