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세제 개편안이 진통 끝에 23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정부 표정은 밝지 않다. 법인세 최고세율 3%포인트 인하는 물론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중과(重課) 폐지 등 정부가 당초 제시했던 원안이 줄줄이 후퇴했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국면은 22대 총선인 2024년 4월까지 이어져 내년에도 정부 의도대로 경제정책을 끌고 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세제 관련 예산 부수 법안에 따르면, 법인세 최고세율은 현행 25%에서 24%로 인하되고 동시에 다른 과세표준(과표) 구간의 세율도 1%포인트씩 내려간다. 이는 7월 말 세법 개정안을 통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22%까지 낮추겠다고 한 정부 계획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안은 문재인 정부 시기 22%에서 25%로 올렸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과거 보수정부 때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없다는 더불어민주당 반발에 막혔다.
이에 따라 법인세 세율을 낮추고 체계도 4단계에서 2, 3단계로 단순화하겠다는 정부 구상은 무산됐다. 정부는 법인세 구조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 복잡하고 세부담이 커 기업 경쟁력을 해친다고 강조해왔다.
종부세도 정부가 원안을 사수하지 못했다. 애초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된 종부세 중과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 이상, 비규제지역 3주택자 이상에 더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중과 제도가 '징벌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야는 종부세 중과를 유지하되 부과 대상을 조정대상지역도 2주택자 이상에서 3주택자 이상으로 완화하는 식으로 합의했다. 종부세 중과가 '위헌'이라는 학계 주장까지 끌고 와 폐지를 밀어붙였던 정부로선 성에 차지 않는 결론이다.
그나마 종부세 공제액 상향은 정부안(기본공제 6억→9억 원, 1가구 1주택자는 11억→12억 원)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위안거리다.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2년 유예한 것도 정부 뜻이 관철된 결과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종부세 중과 폐지가 윤석열 정부 핵심 국정과제였던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정부로서는 정책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출범 첫해에 기를 펴지 못한 셈이기 때문이다. 또 예산안과 세제 개정안 협상에서 정부가 체면을 구기는 건 내년에도 재연될 가능성이 적잖다.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내년엔 야당이 더욱 정부·여당을 압박할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과거 집권한 그분들이 (그때와) 똑같은 가치와 이념으로 정책을 운영하라고 하면 그건 정권이 바뀐 게 아니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