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제 스무 살이니 신체 건강할 때입니다. 힘내서 뜻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고 편히 지내면서 졸장부처럼 지내서야 되겠습니까.”
조선시대 양반 여성 김삼의당(1769~1823)이 남편에게 쓴 편지다. 남편이 뜻을 세우도록 독려하는 어조가 당차다. 여성을 낮게 보는 사회 제도에 굴하지 않고 삶을 함께하는 파트너로서의 자존감이 느껴진다. 강정일당(1772~1832)이 남편에게 보낸 서한도 만만치 않다. “당신이 누군가 꾸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목소리가 매우 사납더군요. 이는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설령 이렇게 사람을 바로잡았다고 해도, 스스로 바르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더 깊이 살펴 주세요.”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소비되는 조선시대 양반 여성 모습은 뻔하다. 세상물정 모르고 남편 말에 순종하거나, 좋은 집에서 호강하며 권력 투쟁에 몰입한다. 모두 과장된 이미지다. ‘이름 없는 여자들, 책갈피를 걸어 나오다’의 저자 최기숙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3,000여 편의 고전문헌을 분석해 왜곡된 양반가 여성 이미지를 해체한 뒤 새롭게 정의한다. “문헌 기록을 통해서는 이런(사치스럽거나 권력 투쟁에 몰입하는) 여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로 있더라도 청빈을 중시하는 조선시대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기록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문헌에서 나타난 양반 여성들은 남편에게 영향을 미치는 친구, 멘토, 스승이었다. 학문과 정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때로 조언했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시종을 호령하는 대감 마님 모습도 사실이 아니다. 시부모 봉양, 가사, 양육, 간병, 상장례를 도맡는 상시 노동자에 가까웠고, 때로 가족 생계를 책임졌다. 그 모든 노동을 해내고도 겸손한 태도를 요구받았다. 한 가지, 남편을 따라 죽어 정절을 지키면 ‘열녀’로 추앙받은 것은 맞다. 유교적 이념 통제를 통해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부추기거나, 살아남아도 남은 삶을 피폐하게 만든 폭력이었다.
생동감 넘치는 여성들이 당장이라도 종이를 뚫고 나올 것 같은 책. 저자는 적극적 해석에 따라 ‘과거를 통해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인문학자의 소임을 다한다. 말하자면 이런 문장이다. “현대 말에도 남편에 대한 아내의 훈계를 잔소리, 또는 바가지라고 하는데 이런 표현은 ‘남성에게 훈계하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비하 발언이다. 여성이 남성을 가르치는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조선시대 양반 여성은 이름이 있었지만 역사화되지 않았고, 남편의 관직에 의존해야 겨우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 후손은 선대의 삶을 복원해 기억해야 한다. 그들을 배제하는 일은 여성 억압을 넘어 실제 존재했던 역사를 축소하고 왜곡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충분히 문자화되지 않았지만 여성의 역량과 힘이 모든 성별의 사람들에게 문화 유전자로 전승되었기에 지금 우리 삶이 역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