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에 투영된 사회적 갈등과 욕망

입력
2022.12.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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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과거로 되돌아가서 현재의 문제들을 바로잡고 싶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욕망 위에 만들어진 드라마가 바로 현재 방영 중인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현재의 기억과 지식을 모두 가진 채로, 과거 시점에서 재벌집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타임 슬립물의 성격과 더불어 빙의물의 성격도 혼합되어 있는 이 드라마의 설정은 현재의 불만이라는 빨간 펜을 들고 과거를 퇴고하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낸다.

타임 슬립물은 언제나 인기 있는 장르 중 하나이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이라는 후회는 꽤 보편적이다. 이 드라마는 인간의 지극히 보편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재벌 집안과 서민들의 삶을 소재로 삼아 특수한 사회적 맥락까지 담아낸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후회와 불만이란 지극히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하다. 타임 슬립과 빙의가 섞인 판타지의 쾌감 너머,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사회적 삶 안에서 관객들이 겪게 되는 후회와 열망이다.

1987년 이후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은 윤현우와 진도준의 개인적인 서사와 맞물린다. 진도준은 윤현우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몰락시켰던 사건들의 원인을 파악해 나간다. 원래 어머니는 아진자동차의 노조원이었던 아버지가 IMF 경제위기 이후 직장을 잃고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난 이후 그는 아진자동차의 고용승계를 이루지만, 윤현우 어머니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번에 어머니가 죽어야 했던 것은 재벌가인 순양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순양생활과학에 대한 거짓 광고로 소액투자자들을 유치하고는 그 투자자들을 희생시켜 기업청산을 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의 가족이든, 소액투자자이든, 어머니의 죽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도준이 가장 다시 쓰고 싶어 했던 사건이 고용승계 문제였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IMF 경제위기 당시 수많은 이가 직장을 잃고 그들의 가정이 파괴되었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고용유연성을 강요당했던 그때 이후 현재까지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고용불안정을 현재의 핵심 문제로 진단한다.

드라마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고용승계를 해결했음에도 어머니가 죽어야만 했던 이유가 재벌이 자신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원리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머슴을 키워서 등 따시게 만들면 지가 주인인 줄 안다. 정리해고는 누가 주인인지 똑똑히 알려주는 것"이라는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노사의 상생을 불가능하게 하는 재벌의 존재 방식 자체가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들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드라마는 지적하는 듯하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에 대해 대안을 요구하며 작가를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드라마나 영화에 담긴 집단적 상상과 판타지를 포착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며 통쾌해하는 관객들의 욕망, 이 드라마를 '국밥집 좌파아들'이라고 부르며 분노하는 관객들의 욕망을 통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과 욕망이 무엇인지 함께 돌아보자. 이제 평범한 집에서 태어난 평범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할 차례다.


이지영 한국외국어대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