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못하는 동물 대신 목소리 내다… 산양 56마리와 소송 건 변호사

입력
2022.12.15 11:00
15면
[동물과 함께하는 직업] <9> 동물권 연구 변호사단체 PNR 이끄는 서국화 변호사

편집자주

동물을 위해 일하는 직업을 꿈꾸는 청소년이 많습니다. 수의사, 사육사, 훈련사 등은 동물 관련 쉽게 떠올리는 직업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실제 영화감독, 출판사 대표, 웹툰 작가 등 다른 직업을 갖고 동물을 위해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동물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나 동물 관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동물학대 처벌을 강화해주세요." 동물학대 관련 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댓글이다.

동물보호법이 반려인들의 정서와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동물의 법적 지위를 높이고, 직접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을 위해 소송에 나서는 이들이 있다. 동물 전문 변호사다.

동물권 연구를 위한 변호사 단체 PNR(People for Non-human Rights∙비인간 권리를 위한 사람들)를 이끄는 서국화(37) 변호사는 동물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전인 2013년부터 동물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다. 서 변호사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해외에서는 동물, 자연물을 원고로 인정한 사례가 있다"며 "우리 법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앞으로 동물을 당사자로 한 소송을 끊임없이 하겠다"고 밝혔다.

소 도축 영상 보며 동물권에 관심

-동물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중 우연히 해외동물단체 페타(PETA)가 공장식 축산 농장에 잠입해 공개한 소 도축 영상을 보게 됐다. 소가 괴로워하는 모습도 충격이었지만 이를 보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도축업자의 모습이 더 기이하게 다가왔다. 타자의 고통을 인식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진다는 걸 느꼈다.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서울 중구 명동에서 진행된 살처분 반대 시위에 동물 가면을 쓰고 참가했다. 2013년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동물 관련 법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직접적으로 느꼈다."

-동물권 관련 소송은 어떻게 맡게 됐나.

"동물권에 관심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일로서 동물을 변호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동물권에 관심의 끈을 놓진 않았다. 그러던 중 동물권행동 카라가 뜻있는 변호사들과 동물보호법 전면개정안 작업을 하고 있는 걸 알게 되면서 함께 활동하게 됐다."

-단독으로 처음 담당한 동물 관련 소송은.

"2013년 카라가 테마파크 쥬쥬동물원으로부터 민형사 소송을 당하면서 카라 측으로부터 이를 전담할 변호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카라는 쥬쥬동물원을 동물학대 등으로 고발했고, 쥬쥬동물원은 카라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면서 3년간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양측 모두 패소했지만 성과는 있었다. 쥬쥬동물원이 더 이상 과도한 동물쇼를 하지 않게 됐다."

혼자 하던 동물 소송, PNR로 확장

-동물 관련 소송만 맡고 있지는 않은데.

"처음에는 고용변호사로 일했다. 하지만 의뢰인 이익에 맞게 자문하다 보니 양심에 반하는 일들이 있었고 결국 그만두고 개업을 했다. 환경 관련 소송을 주로 많이 하지만 일반적인 민형사소송, 행정소송도 맡고 있다. 카라와는 자문계약을 맺고 일했고 지금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변호사 연구단체 PNR를 만들었다.

"카라와 활동하면서 동물 관련 소송을 많이 맡았지만 단체가 맡은 사건 외에 동물 이슈를 위해서는 어떻게 활동할지 고민이 됐다. 혼자 일하다 보니 확장성이 없다는 생각도 들던 차 2017년 동물 분야에 관심이 있는 박주연 변호사와 함께할 변호사를 모아 단체를 꾸렸다. 개인적 소송은 맡지 않고 정책에 영향을 주는 소송을 한다. 현재 회원은 15명으로 14명은 변호사, 1명은 작가다."

-PNR(비인간 권리를 위한 사람들)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PNR는 미국에서 '비인간인격체'의 권리를 주장하며 소송을 진행한 것으로 잘 알려진 '비인간권리프로젝트(Nonhuman Rights Project∙NhRP)'의 활동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단체명 역시 비인간권리프로젝트를 변형한 것인데 단체 측으로부터 허락도 받았다."

"동물을 당사자로 한 소송 끊임없이 할 것"

-기억에 남는 소송은.

"2018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구간에 서식하는 산양 56마리가 산양 연구가와 케이블카 사업 허가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이다. PNR와 뜻을 모은 변호사 10여 명이 맡았다. 국내에서도 동물이 소송 당사자로 나선 적이 있지만 한번도 원고로 인정된 적은 없어 어려울 거라 예상은 했다. 각하됐지만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알릴 수 있었다. 앞으로도 동물을 당사자로 한 소송은 끊임없이 해야 하고, 또 할 생각이다."

-동물 변호에 있어 어려운 점은.

"피해자가 동물이라 증언을 확보하기 어렵고, 가해자가 부인할 때 주변적 상황으로 범죄를 입증하는 게 힘들다. 트럭에 개를 싣고 다니는 개장수를 고발했는데, 그는 예상대로 반려용으로 산 게 아니라 식용으로 샀다고 주장했다. 판매업 등록대상이 반려동물로 한정되어 있다는 걸 알고 반려목적이 아니라고 부인한 것이다. 결국 검찰로 송치돼 무등록 판매에 대한 약식명령을 받았지만 재발을 막을 수는 없었다."

-꼭 개정하고 싶은 법은.

"축산물위생관리법이다. 개식용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축산물로 이용되는 동물이 생명이라는 인식이 전혀 깔려 있지 않은 법이다. 위반시 처벌내용 등에도 공백이 너무 많다. 적어도 동물이 존엄성을 갖는 생명이라는 전제가 있는 법률로 만들어져야 한다. 실험, 전시동물과 달리 농장동물은 사람들이 고기로 이용하면서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관련 법이 바뀌면 그만큼 영향을 크게 미치게 되기 때문에) 동물 관련 법 가운데서도 가장 마지막에 바뀔 것 같다."-앞으로의 목표는.

"법조계와 학계에서 동물권 논의는 아직 소수 중에서도 소수의 관심사다. 동물권은 우리 산업 체계, 사회 구조와도 연결되어 있는 만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이를 근본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싶다."

동물전문 변호사가 되려면

동물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되려면 동물을 좋아하고 공감능력이 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동물 관련 법의 현실을 인정하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동물을 대변하기에 당위성 측면에서 접근하기보다 제도적인 한계를 파악하는 게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기엔 변호사가 유리하지만 검사나 판사 등 공직에 진출하는 것도 동물을 위해 일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유정우 울산지방법원 판사는 동물학대범에게 이례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하며 양형이유를 긴 판결문에 적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비인간권리프로젝트(NhRP)를 이끄는 스티븐 와이즈도 "어쨌든 최종 판결은 판사가 하므로 동물권 향상을 위해 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변호사로서 동물을 위해 일할 수 있지만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검사나 판사가 되는 것도 고려해보면 좋겠다.

도움말: 서국화 PNR 대표

고은경 애니로그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