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시위로 본, 지방대의 지속가능성

입력
2022.12.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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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민 '현장의 힘'

편집자주

차별과 갈등을 넘어 존중과 공존을 말하는 시대가 됐지만, 실천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모색한다, 공존’은 다름에 대한 격려의 길잡이가 돼 줄 책을 소개합니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올해 여러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시위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연세대에서는 학생들이 청소노동자 시위가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민사소송을 걸었고, 덕성여대에서는 청소노동자와 학생과의 갈등이 온라인 공론장을 떠들썩하게 했다. 누군가는 청소노동자와 연대할 줄 모르는 ‘요즘 세대’를 향해 혀를 차고, 누군가는 더 좋은 일자리로 가지 못하고 ‘청소나’ 하는 이들의 무능력을 비난한다. 그러나 대학의 청소노동자 문제는 임금 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교두보이기도 하다.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사무국장인 배성민의 '현장의 힘'은 지방대 청소노동자들이 해고에 맞서 벌인 114일간의 시위를 다룬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대학들은 예산 절감과 인력 감축으로 대응해왔다. 2021년 신라대는 신입생 충원율이 하락하자 비용 절감을 위해 청소노동자를 일제 해고하고, 교직원들이 직접 학교를 청소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청소노동자들은 민주노총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과 함께 투쟁에 나섰다.

신라대 현장이 처음이었던 저자와 달리,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0년간 2012년, 2014년에 이어 세 차례 쟁의를 경험한 전문가다. 이들은 일자리를 잃은 불쌍한 어머니도, 반찬값을 벌러 나온 여사도 아닌 조직된 노동자로 자부한다. 농성을 시작하고 이불과 담요 등을 챙기고 만반의 준비를 한 노동자들과 달리 노조 간부로 온 저자가 현장에 대해 더 모르는 것이 많고 서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현장의 힘’이다.

'현장의 힘'은 노동운동에 대한 여러 기대를 배반한다. 남성 간부가 지도하고 여성 노동자가 따른다는 성별화된 위치는 초짜 간부와 숙련된 노동자의 차이로 인해 역전된다. 서툰 간부를 돕기 위해 지회장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야 했다.

투쟁과 나들이가 결합된 방식의 연대 활동 역시 새롭다. 파업 현장에 연대하러 가는 김에 인근에 가서 나들이를 하면서 활력을 얻고 온다. 조합원들의 새벽 산책은 장기간 이어질 투쟁의 바탕이 되었다. 조합원들은 ‘지속가능한 투쟁’을 위해 고심한다. 길에서 유인물을 나누어주거나 출퇴근 시간에 선전전을 할 때도 학생들과의 관계를 고민한다. 단기간에 효과를 내기 위해 과격한 방법만을 동원할 것이 아니라 ‘첫눈이 올 때까지’(부산은 눈이 거의 오지 않는다)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파업이 종료된 후에도 학생들, 교직원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을 고민한 결과다.

파업을 시작하면서 남편들이 가사를 익히게 된 가정도 많다. 집을 비운 아내 대신 이것저것 살림을 하다 보니 아내의 소중함을 깨달았는지 예전보다 가족이 화목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집 비우고 밖에서 싸돌아다닌다’와 같은 평가는 없다. 100일이 넘는 투쟁으로 합의를 체결한 다음날에도 다른 현장에 지지 방문을 갈 만큼,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인지하고 연대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투쟁’이다.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이 이처럼 잘 훈련된 활동가가 된 것은 지난 10년간 대학 사회에 불어닥친 구조조정과 연결된다. 학교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용역회사를 통해 청소노동자들을 간접고용했고, 해마다 고용 계약을 갱신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했다. 저자의 지적처럼 청소노동자 해고는 신라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벚꽃 엔딩’(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이라는 지방대학의 현실이 만들어낸 상황이다.

때로는 학과도 구조조정으로 인한 통폐합 대상이 된다.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는 2021년 폐과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신입생이 입학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교육부 대학평가에서 취업률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계, 예체능계는 손쉽게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통계상 2040년에는 학령인구가 대학 정원의 절반으로 줄어들고, 감소분은 지방대학을 직격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제2, 제3의 신라대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지방 사립대 연쇄 폐교 우려에도 한국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는 것은 지방대는 수도권대학보다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방대 위기는 지방에 일자리가 없다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와도 직결되는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논의는 공회전하고 있다. 이런 능력주의적 사고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를 지방대 청소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