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공공의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과 명랑함과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아니 나의 명랑함 훈련하기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공공의 문제는 공동체 안의 갈등을 다루는 일이다. 어떤 문제와 관련해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간에 최소 합의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숫자나 기계가 아닌 사람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관계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갈등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이 필요하다. 그 문제가 가진 독성에 찔리지 않되, 그 문제를 둘러싼 여러 가지 갈등 사이를 부지런히 오갈 힘이 필요하다. 대안 없는 곳에 대안을, 길이 없는 곳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말이 안 되는 억지 주장 사이를 지날 때도 있고,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이들의 눈물 사이를 지날 때도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그 불구덩이 사이를 지나다 보면, 꺾이고 싶지 않지만, 꺾이고 마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 문제를 들여다보는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이겨낼 힘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오래 고민해보았다. 나름 찾은 대안은 명랑함을 훈련하는 것이었다. 문제가 주는 압박감에 짓눌리지 않고, 이 지지부진한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길 방법은, 문제 자체를 넉넉하게 바라볼 힘, 이 문제가 날 넘어뜨리지 못한다는 의지적 명랑함을 갖추는 것 외엔 없는 것 같았다. 이후로 명랑함 연습하기는 공공문제를 다루는 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 목록 중 하나가 되었다.
간혹 이 명랑함을 해맑음 혹은 외적 활발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아니다. 오히려 내적 단단함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즐겁게 감당해내려는 의지, 마음이 꺾이는 순간을 만나더라도 쉽게 꺾이지 않겠다는 마음, 눈물을 쏟았을지라도 명랑하게 다시 일어나겠다는 각오', 쉽게 가질 수 없어 늘 연습이 필요한 마음이다.
공적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사람을 나는 가끔 촛불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가 정치를 하는 사람이든, 글을 쓰는 사람이든,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이든, 예술을 통해,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는 사람이든, 일상의 작은 실천을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사람이든, 그 누구든, 공공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사람들을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태워냄으로 달려갈 동력을 만드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정치영역에서 잘 다뤄져야 할 문제들이 내동댕이침을 당하고 있는 요즘, 웃지 않게 된 지 오래된 지금, 분노와 함께 나오는 독성 가스로부터 나를 보호할 명랑함이 절실해졌다. 그 문제를 다루다, 나 또한 그 문제와 닮아버린 존재가 되는 건 아닐까 겁이 나기 시작한 지금, 의지적으로 명랑함을 훈련해야 함을 다시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누고 싶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실망감, 정치에 대한 분노와 혐오, 우리 공동체에 대한 좌절 등으로부터 마음이 꺾이지 않을 방법을 공유하는 것 또한,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말이다. 언제까지 이 문제들을 놓고 씨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 나의 명랑함 연습하기가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누군가가 사실은 나임을 이 글을 읽어본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