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시대 연 20%로 고정된 ‘법정 최고금리’가 서민 급전창구인 대부업체 대출 문턱을 높이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저소득ㆍ저신용자 등 금융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가 되레 이들을 제도권 밖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2년 10월 대부업법이 제정된 이후 대부업계는 법으로 정해진 이자율 상한을 적용받아 왔다. 연 66%에서 출발한 최고금리는 2014년 연 34.9%까지 꾸준히 떨어졌고, 시행령 개정과 함께 2016년 27.9%, 2018년 24%를 거쳐 지난해 7월 20%까지 낮아졌다. 2020년 11월 당시 여당 원내대표는 당정회의에서 최고금리 인하 방침을 결정하면서 “저금리 상황에서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로 두는 건 시대착오적”이라며 “합리적으로 낮춰 서민 이자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0.5%에 불과했다.
최고금리 인하 이후 역설적으로 서민들의 자금조달은 더 어려워졌다. 대출 공급 자체가 줄어든 탓이다. 금융위원회 등록 대부업체는 2019년 1,355곳에서 지난해 말 940개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이용자 수는 161만 명에서 96만 명으로 줄었다. 대출 잔액은 2019년 13조4,507억 원에서 지난해 10조9,866억 원으로 18.3%가량 쪼그라들었다. 최철 숙명여대 교수는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대출을 못 받고 배제된 사람이 40만 명, 금액으로는 2조 원으로 추산된다”며 “최고금리가 적어도 연 26.7% 이상은 돼야 초과수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기준금리 인상은 저소득층을 제도권 금융에서 더욱 빠르게 밀어내는 요인이다. 대부업체는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온 다음 이를 다시 소비자에게 빌려주는데, 조달금리 자체가 껑충 뛴 것이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시장 전체의 70%를 담당하는 21개 우수대부업자들의 조달금리가 최소 연 7% 이상”이라며 “대손비용을 8~10%로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고, 광고비와 인건비, 임대료 등 원가만 따져도 신용대출 금리는 20%를 넘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업체 입장에선 신규 대출 취급을 중단 혹은 축소할 수밖에 없고, 최고금리에 가까운 금리를 적용받는 취약계층부터 밀려난다는 설명이다.
시장 상황에 맞게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 주장이다. ‘시장금리 연동형 법정최고금리제’를 도입해 지금 같은 고금리 시대엔 상향해 주자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최근 여신금융협회가 발간한 ‘시장금리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도입의 필요성’ 보고서는 조달금리 상승분을 반영해 법정 최고금리를 20%에서 23.5%로 올렸다면 현재 시장에서 배제된 106만 명 차주 중 96.9%(102만 명)가 대출 시장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란 시뮬레이션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엔 법정 최고금리를 10~15% 수준까지 추가로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더 많다. 관련 대부업법ㆍ이자제한법 개정안도 국회에 쌓여 있다. 금융당국 역시 법정 최고금리 조정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정 최고금리는 서민 금융 접근성과 고금리 대출로 인한 이자 부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