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러시아에 수감 중이던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선수 브리트니 그라이너와 맞교환 형식으로 풀려난 러시아 무기 거래상 '빅토르 부트'가 누구인지, 또 러시아가 그의 석방을 원한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트는 중동과 아프리카 등 전 세계 분쟁지역에서 불법 무기 밀매로 ‘죽음의 상인’으로 악명을 떨치다, 2008년 미 당국에 체포된 범죄자다. 그런데 러시아에선 이후 15년 가까이 부트의 석방을 최우선으로 요구해 왔다.
타스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러시아와 미국 측 정부 인사들이 나온 가운데 부트와 그라이너의 맞교환이 이뤄졌다.
부트는 이후 러시아 정부가 제공한 특별기를 타고 모스크바 브누코보 국제공항으로 귀국했다. 러시아 국영TV에선 공항에 마중 나온 부인 알라와 어머니 사이사가 부트를 포옹하는 장면을 생중계했다. 그의 생환에 대한 러시아 사회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대사는 "우리는 당신이 (미국에서) 받은 강한 육체적·정신적 압박을 안다"며 "당신의 석방을 위한 러시아의 노력이 결국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부트는 해외 무기밀매 사업에서 러시아 당국의 비호를 받았다. 구소련 공군 장교로 복무했던 부트는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버려진 구소련제 무기들을 모아 앙골라와 시에라리온 등 분쟁 지역에 팔았다.
부트의 이 같은 사업은 러시아 군정보국(GRU)의 암묵적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WSJ는 분석했다. GRU의 눈을 피해 구소련제 무기들을 해외로 빼돌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부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이고르 세친 전 부총리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트가 러시아 군사 비밀을 많이 아는 주요 인사였다는 얘기다.
부트가 알고 있는 민감한 정보들은, 러시아가 부트의 석방을 꾸준히 추진한 주요 이유라고 WSJ는 분석했다. 러시아 정부가 부트에 대한 송환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여야만 이들 사이의 비밀이 끝까지 지켜질 수 있었던 셈이다. 실제 부트는 2008년에 체포돼 지금까지 미국에서 15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해왔지만 러시아 정부와 관련된 유착관계를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고, 러시아군 관련 정보도 유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러시아 정부가 다른 러시아 첩보원들에게도 “조국이 절대 잊지 않는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주기 위해, 부트 석방을 추진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러시아 정치 전문가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러시아에선 부트 같은 사람을 ‘스보이(svoi)’라고 한다”며 “조국을 위해 일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그라이너의 송환을 위해 부트 석방을 결정했지만, 미국 내에선 다소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더힐은 “이번 맞교환이 러시아에 더 유리한 것이었다”며 “그라이너의 경우 유명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지은 죄가 경미한 데 비해 부트의 범죄는 매우 심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라이너는 올해 2월 대마초 추출 오일이 함유된 전자담배를 소지하고 모스크바 공항에 입국하려다 마약밀수 혐의로 체포됐다.
러시아에 수감 중인 미국인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 거물 무기상을 석방해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직 미 해병대원인 폴 훨런은 2018년 러시아를 방문했다가 간첩 혐의로 체포돼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미 공화당 의원들은 "그라이너를 부트와 맞교환하면서 폴 훨런을 남겨둔 건 비양심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