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대 일본전 불패의 좌완 투수 이선희(67)가 고교 감독으로 변신한다. 그가 새로 둥지를 틀 팀은 경주고. 그에게 감독직은 야구 인생 55년 만에 처음이다.
이선희 감독은 최근 8년간 영남대에서 투수 인스트럭터로 선수들을 지도해왔다. 주말이면 인근 도시의 야구 꿈나무들에게 재능기부도 펼쳐왔다.
그가 67세의 고령에도 경주고 감독직을 맡게 된 데는 나름 소명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선수들과 오랜 기간 함께 해왔기에 학생 야구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으므로 여기에 그의 남은 열정과 능력을 쏟아 부을 작정이다. 선수육성 뿐 아니라 지도자 양성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선희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는 일본과의 대결에서 '상승불패', 그것도 국제무대에서 10차례가 넘는 경기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1970년대 한국 야구는 “숙적 일본에 이길 수 없다”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이런 인식을 바꿔 놓은 이가 바로 이선희 감독이다. "일본에 절대 이길 수 없다"에서 "해봐야 승패를 알 수 있다"로 바뀌게 한 것은 이선희라는 대투수의 등장시기와 맞아 떨어진다. 구대성-봉중근-김광현으로 이어진 한국 야구 좌완 계보의 시조이자 원조 일본킬러인 셈이다.
그는 수년 전부터 모교 경북고에서 감독직을 맡아 달라던 요청에도 "자리에 연연하기 보다는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다"며 마다했다.
그러나 이번엔 큰 결단을 내렸다. 후배 아마야구(대학, 고교) 지도자들에게 무언가 하나 물려주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경주고 감독직에 응했다. 이력서를 작성해본 것도 처음이었고, 면접에 응한 것도 처음이었다.
이선희 감독은 "아마 야구계에서의 지도자 양성이 잘 되지 않는다"며 "젊은 코치들의 짧은 수명과 주변 환경, 지도자로서의 성장에 필요한 교육과 시스템이 열악하다는 것을 최근 몇 년간 느꼈다. 후배들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기반을 잘 만들어 놓고 가고 싶어서였다"며 야구 인생 첫 감독직 수락 배경을 밝혔다.
한편 MBC 청룡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한 김용달 전 삼성 코치는 "야구 원로에 속하는 이선희 선배님께서 보통 지도자들이 보여줄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전 코치는 "도저히 일본 야구를 이길 수 없다고 여겨지던 시대에 이선희라는 대투수의 등장으로 얼마나 큰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었나. IMF때 박찬호 선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듯이 70년대에는 이선희라는 선수가 그 역할을 했었다. 그의 야구 인생도 갈무리를 잘 할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