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가 ‘히잡 시위’에 참가한 남성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다. 지난 9월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 의문사 이후 이를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가 3개월째 계속되면서 2만 명 가까운 시위대가 당국에 체포됐지만, 사형을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8일(현지시간) 이란 사법부가 운영하는 ‘미잔통신’에 따르면,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모센 셰카리(23)의 형이 이날 집행됐다. 셰카리는 9월 25일 수도 테헤란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보안군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혐의로 체포된 뒤 지난달 20일 이슬람 혁명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비공개로 재판을 진행하는 혁명재판소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를 보여주지 않고 변호사도 선택할 수 없도록 해 악명이 높다. 미잔통신은 셰카리측 변호사가 제기한 항소가 기각돼 사형이 집행됐다고 전했다.
국제사회는 즉각 이란 정부를 비난했다. 유럽연합(EU) 외교부 격인 대외관계청(EEAS)은 성명을 내고 “이란 당국은 사형 판결 및 향후 추가적인 사형 집행을 삼가고, 사형제도 전면 폐지를 위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며 강력 규탄했다.
이어 “이란도 당사국으로 참여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명시된 의무를 엄격히 준수할 것을 호소한다”면서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를 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기본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 책임자 메흐무드 아미리 모가담은 “셰카리가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불공정한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 받고 목숨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이날 성명을 내고 “유죄 판결을 받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사형 집행은 이란 사법 체계의 비인간성을 드러낸다”고 날을 세웠다. 인권단체는 반정부 시위대 10여명의 사형 집행이 임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신뢰하지 못할 약식 재판”이라며 “이란 정권의 인권 경시는 끝이 없다”고 지적했고, 프랑스 외교부 대변인은 “이번 사형 집행은 중대하고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면서 이란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주요 도시에서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체포돼 경찰서에서 의문사한 아미니 사건으로 촉발한 시위가 석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란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지난 2일 기준 미성년자 64명을 포함해 469명의 시위 참가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집계했다. 구금된 시위대는 1만8,000여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