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네이마르 유니폼 교환에 스페인이 들썩인 까닭은

입력
2022.12.10 14:00
9월 스페인 퍼진 비니시우스 '춤 세리머니' 논란
네이마르, 당시 동료 비판한 마요르카 선수 저격
스페인 축구 관계자 "비니시우스 원숭이 짓 그만"
브라질, 월드컵서 '비니시우스 사태' 강조 춤 계속

스페인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이강인(21·마요르카)과 네이마르(30·파리 생제르맹)가 유니폼을 교환한 것에 비상한 관심을 두고 있다. 단순하게 선수들 간 유니폼 교환으로 해석하지 않아 이목을 집중시킨다.

스페인 매체 디아리오 데 마요르카는 최근 이강인과 네이마르가 이번 월드컵 16강전을 치른 뒤 서로 인사를 하고 유니폼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두 선수가 탈의실로 들어가는 도중 유니폼을 교환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포착됐다며 "마요르카 선수가 네이마르에게 셔츠를 교환해 달라고 요청한 순간, 브라질 스타는 아무 문제없이 동의했다"라고 전했다.

두 선수는 지난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974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에서 만나 경기를 펼쳤다. 이강인은 후반 29분 이재성(30·마인츠)과 교체 투입돼 백승호(25·전북)가 골을 넣는 데 기여했다. 결국 브라질은 한국에 4-1로 승리해 8강에 진출했다.

TV 카메라에 포착된 영상에서 이강인은 탈의실로 직행하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는 뒤늦게 걸어오는 네이마르에게 악수를 청했고, 네이마르도 흔쾌히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네이마르는 그렇게 들어가려는 이강인을 다시 부르며 유니폼을 교환하자고 했다.

선수들끼리의 유니폼 교환은 그저 일반적인 행동이다. 이 특별할 것 없는 장면에 스페인 언론이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축구스타' 네이마르와 스페인의 미묘한 신경전

이 매체가 이강인을 '마요르카 선수'라고 한 번 더 표현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두 달여 전 네이마르가 마요르카의 한 선수를 저격하는 글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일 때문이다.

네이마르는 지난 9월 SNS에 "라이요가 누구야(Who is Raillo?)?"라고 적었다. 그가 말한 '라이요'는 이강인의 소속팀 마요르카 주장인 안토니오 라이요(31)를 가리킨다. 네이마르는 왜 라이요를 저격했을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스페인 리그 라리가에서 뛰고 있는 브라질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22·레알 마드리드)는 '춤 세리머니'로 스페인 내에서 비판을 받았다. 상대 팀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라리가뿐만 아니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에서 우승할 정도의 최정상급 팀인 레알 마드리드 선수가 골을 넣었다고 춤을 추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더군다나 실력차가 많이 나는 팀과 경기를 할 경우 자칫 "무시당하는 기분"을 줄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지난 9월 레알 마드리드와 마요르카의 경기에서 비니시우스는 상대팀 선수들과 자주 부딪히며 언쟁을 벌였고, 격렬한 몸싸움으로 두 팀의 경기는 과격해졌다. 심판의 옐로카드가 자주 나오자 마요르카 주장인 라이요는 비니시우스를 말리며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다. 그런 와중에도 비니시우스는 춤 세리머니까지 챙겼다.

비니시우스는 계속 상대를 자극했고 이는 하비에르 아기레 마요르카 감독까지 폭발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아기레 감독은 선수들에게 비니시우스를 더 거칠게 다루라는 주문을 했다. 그러자 비니시우스는 아기레 감독에게 항의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카를로 안첼로티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 나섰다. 비니시우스를 향해 "그만하라"는 제스처를 취한 뒤 "경기에 전념하라"고 소리쳤다.

경기가 끝난 뒤 라이요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디아리오 데 마요르카와의 인터뷰에서 "비니시우스는 경기장에서 파울도 하고 춤도 추며 모든 걸 마음대로 다 한다. 그렇지만 동료들을 모욕하거나 얕잡아 보지 말라"고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이어 "그러다 불리해질 때마다 인종차별 카드를 사용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뷰 내용이 공개되자 네이마르는 발끈했다. 바르셀로나 소속 시절 골을 넣으면 춤 세리머니를 했던 그였다. 네이마르는 SNS에 "라이요가 누구야?"라고 써서 올렸다. 세계 축구계를 쥐락펴락하며 최고 수준의 몸값을 자랑하는 네이마르의 말은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네이마르의 반응에 수많은 팬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동의를 표했다. 라이요는 졸지에 유명하지 않은 선수로 전락하며 세계적인 축구스타에게 굴욕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스페인 입장에서 보면 브라질 선수가 자국 선수를 무시했다고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스페인 언론은 두 사람의 유니폼 교환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다. 마요르카 선수를 저격했던 네이마르가 해당 팀의 선수와 웃으며 유니폼을 교환하는 모습이, 어떤 화해의 제스처로 비친 모양이다. 디아리오 데 마요르카는 "네이마르가 두 달여 전에 SNS에 '라이요가 누구야?'라고 비꼬는 질문을 했을 때 마요르카에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랬던 네이마르가 마음이 풀려 마요르카 선수인 이강인과 유니폼 교환을 했다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은 또 다르다. 이강인이 미래에 대성할 선수라는 걸 미리 알아본 네이마르가 유니폼을 교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6강전을 앞두고 브라질의 주장 치아고 시우바(38·첼시)조차 경계해야 할 한국 선수 중 이강인을 콕 집어 지목했다. 시우바는 기자회견에서 "손흥민, 6번(황인범), 이강인"이라며 "이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밝혔다.

비니시우스 '춤 세리머니'...스페인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비니시우스는 라리가에서 뜨거운 감자다. 특히 그의 춤 세리머니는 라리가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등 관계자들에게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으로 찍혀 좋지 않은 여론을 형성했다.

또 초대형 사건이 벌어졌다. 페드로 브라보 스페인 에이전트 협회장이 스페인의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니시우스의 춤 세리머니를 원숭이에 비유해 논란이 됐다. 브라보 협회장은 "라이벌을 상대로 골을 넣었을 때 삼바춤을 추고 싶다면 브라질로 가라"며 "스페인에서는 서로를 존중한다. 원숭이나 하는 짓은 그만둬라"라고 말해 스페인이 발칵 뒤집어졌다. '원숭이'라는 표현이 인종차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보 협회장의 SNS에는 그의 발언을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그러자 그는 사과글을 게재했다. 그는 SNS에 "비니시우스의 춤 세리머니를 설명하기 위해 '원숭이나 하는 짓'이라고 한 말은 헛소리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며 "그 누구에게도 불쾌감을 주려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 여파는 컸다. 경기장 앞에서 인종차별적 언어로 비니시우스를 공격하는 관중들이 생겼다. 지난 9월 19일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에서 아틀레티코 팬들은 '춤 그만 춰라' '원숭이' 등 인종차별적인 구호로 비니시우스를 조롱했다.

상황은 스페인 총리가 나서는 국면으로 확대됐다. 인종차별적인 행위가 경기장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에 스페인 당국은 곧바로 행동을 취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아틀레티코 경기장에서 인종차별적인 행동이 일어났다는 것이 슬프다"며 정부 차원에서 문제를 파악한 후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아틀레티코는 인종차별적 구호를 외친 이들을 조사해 클럽에서 영구 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틀레티코는 "당국과 협력해 가해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며 "이러한 행동은 용인될 수 없다. 이들이 완전히 제명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레알 마드리드도 성명을 통해 "최근 비니시우스에 대한 불미스러운 발언과 함께 축구, 스포츠 및 생활 전반에서 모든 종류의 인종차별적이고 외국인 혐오적인 표현과 행동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어 "구단은 앞으로 우리 선수들에게 인종차별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비니시우스를 옹호하며 춤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들은 공식 SNS를 통해 "춤과 드리블이 있지만 무엇보다 존중이 필요하다"며 "비니시우스는 인종차별적 발언의 대상이었다. 브라질 축구대표팀은 더욱 연대를 강화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비니시우스와 네이마르, 루카스 파케타(25·웨스트햄)가 나란히 서서 춤 세리머니하는 동영상을 게재했다.

비니시우스는 자신의 SNS에서 작심 발언을 했다. 그는 "나는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의 희생자이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어제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호나우두와 네이마르, 파케타, 앙투안 그리에즈만(31·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선수 이름을 거론하며 "춤 세리머니는 내 것이 아닌 이들에게서 왔다. 세계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게 춤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춤 세리머니'...어떻게 봐야 하나

브라질은 비니시우스 사태를 의식해서인지 이번 월드컵에서 춤 세리머니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과의 16강전에서 선수들은 4골을 넣었는데 그때마다 춤을 췄다. 이날 1골을 기록한 비니시우스는 모든 골 세리머니에 나타나 몸을 흔들었다. 네이마르, 히샤를리송, 파케타 등을 비롯해 치치 브라질 감독까지 동참, 그라운드에서 춤 세리머니를 펼쳤다. '비매너' 행동이라는 논란도 불거졌다.

스페인은 이런 모습을 비판했다. 스페인 매체 마르카는 "브라질은 다른 안무가와 계약해야 할 것"이라며 비꼬았다. 16강전에서 4골을 넣었으니 8강, 4강 등을 거치며 더 많은 골을 기록할 텐데, "이 속도라면 레퍼토리가 소진돼 새로운 안무가가 필요할 것"이라는 조롱 섞인 비판이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도 이날 춤 세리머리를 비평했다. 신문은 "엄숙한 유럽에서는 브라질 선수들의 춤 세리머니를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브라질 선수들은 비니시우스에게 헌정 같은 개념으로 춤을 췄다"고 보도했다. 최근 영국에서도 축구 전설들이 브라질의 춤 세리머니를 비판하며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꼬집고 있다.

이런 비판에 치치 브라질 감독은 "결례를 저지르려던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골이 터지고 경기력이 좋아서 기쁜 마음에 세리머니를 한 것일 뿐 "상대에 대한 무시는 전혀 없었다. 평소 존경하는 파울루 벤투 한국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브라질 선수들은 계속 춤을 추겠다고 선언했다. 파케타는 "그저 세리머니일 뿐"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게 싫다면 할 말이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골을 넣으면 춤을 출 것"이라고 했다. 하피냐(26·바르셀로나)도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내에서도 의견은 갈렸다. 누리꾼들은 "격차가 심한 상대팀에게 저런 세리머니를 하는 건 결례일 수 있다", "정도껏 해야지 시간 끌며 깔깔대는 건 조롱하는 거다" "세계적인 선수들인 만큼 그에 걸맞은 수준의 행동을 보고 싶다" 등으로 반응했다.

반면 무례하지 않다는 반응도 많았다. 이들은 "기뻐서 추는 걸 무례하다고 하다니 시비 걸지 마라", "국뽕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세계적인 스타들의 세리머니를 보는 것도 월드컵의 즐거움", "그저 문화의 다양성일 뿐이다", "오히려 세리머니 안 하고 담담한 척하는 게 더 기분 나쁘지 않을까" 등으로 표현했다.

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