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례 참조해 동물학대 양형기준 마련해야"

입력
2022.12.09 11:00
동물권행동 카라, 조정훈 의원 공동 토론회 개최
동물학대범죄 늘지만 재판부 따라 결과 제각각
양형기준 마련 필요성 공감하지만 현실적 제약
해외사례 참고, 사회적 인식 확산 등 뒤따라야

동물학대 처벌 수위가 낮고, 재판 결과도 제각각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동물학대 범죄 관련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례축적 부족, 양형기준이 미설정된 다른 범죄와의 우선순위 등 현실적 한계 요인을 먼저 분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물범죄 양형기준 수립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동물학대 범죄 양형기준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됐다. 이날 토론회는 동물권행동 카라와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동물학대 늘지만 재판부에 따라 결과는 들쑥날쑥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은 2020년 992건으로 2016년 304건보다 3배 이상 늘었지만 검찰에 송치된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발제자로 나선 전진경 카라 대표는 "어렵게 피의자를 특정해도 동물범죄 양형기준 미비로 대부분의 사건이 관행적으로 벌금형과 집행유예 처분에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계획적으로 고양이를 포획해 학대한 '포항 폐양어장 사건'과 고양이 학대 행위를 온라인으로 유포해 공유한 '고어 전문방 사건'은 범행 수법의 잔혹성과 계획성, 사람 대상 범죄 가능성 측면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는 게 전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포항 사건은 징역 1년 4개월 및 벌금 200만 원이, 고어 전문방 사건은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는 등 재판 결과는 재판부에 따라 확연히 달랐다.

사례부족 등은 해외 사례 참조로 보완해야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마련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현실적 제약이 있음을 지적했다. 동물학대범에게 이례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하며 양형이유를 긴 판결문에 적시해 화제가 됐던 유정우 울산지방법원 판사는 양형기준 마련을 위해 필요한 △사례 축적의 부족 △양형기준 미설정 다른 범죄들과의 우선순위 △권고 형량범위 설정 문제 △벌금형 선고의 양형기준 미적용 등 현실적 제약이 있음을 지적했다.

유 판사는 "실제 사례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는 해외 실제 사례를 참고하고 예상 사례를 최대한 많이 작성해 분석, 양형인자를 추출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양형기준 대상 범죄로 지정되기 위한 중요기준으로 국민적 관심과 이해관계 직결 여부, 범죄발생 빈도를 들 수 있다"며 "이는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돼야 함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박미랑 카라 동물범죄 전문위원장 겸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미국과 영국의 사례에 주목하며 국내 동물학대 범죄 양형기준 마련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동물학대는 피해자인 동물이 스스로 변호할 수 없고, 피해자에게 반성이 전달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나라 사례를 참조해 성적학대와 같은 구체적 유형추가, 아동 앞에서의 행위나 혐오범죄와 연결되는 경우 가중요소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학대자의 소유와 양육 금지 제도를 도입하고, 집행유예 시에도 보호관찰 의무를 부과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장·실험동물 문제도 깊이 논의돼야

온라인 커뮤니티에 햄스터를 학대하는 사진을 올린 학대범을 검거한 김영준 강남경찰서 수사관은 피학대동물이 말을 할 수 없어 수사 개시와 피의자 특정 및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수사관은 "동물 사체 부검도 농림축산검역본부 공조에 의존하는 등 전문 인력, 장비 등이 필요하다"며 "양형기준이 마련된다면 일선 경찰관의 동물범죄 수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동물권 연구단체 피앤알(PNR) 대표인 서국화 변호사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민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동안 양형을 높이는 효과가 있던 재물손괴를 함께 기소하지 못하게 된다"며 "오히려 동물이 물건이 아니게 되면서 양형이 낮아지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올 수 있어 세심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농장동물, 실험동물 등 '어차피 죽을 동물'이라는 이유로 고통을 가하는 행위가 범죄로 다뤄질 수조차 없는 동물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카라는 이날 2,708명이 서명한 양형기준 수립 촉구 시민 서명을 김영란 양형위원회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오늘의 논의 내용을 비롯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동물학대 범죄의 양형 합리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조정훈 의원은 "동물을 상대로 한 범죄는 심각한 생명 경시의 비극적인 결과"라며 "동물범죄 논의가 앞으로도 입법∙정책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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