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결혼'이라고 불렸던 최태원(62)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1)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의 인연은 '세기의 이혼'으로 결말이 났다.
민주화 운동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1980년 서울대에 입학했던 노 관장은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로 '괴수의 딸'이라는 플래카드가 캠퍼스에 붙는 등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윌리엄 앤 메리대를 나와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전공하던 그는 1985년 최 회장과 처음 만나 3년 넘게 열애한 끝에 1988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했다.
현 SK그룹의 기틀을 다진 고 최종현 회장의 맏아들인 최 회장과 당시 현직 대통령의 맏딸의 결혼으로 세기의 결혼이라 불렸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연애 당시 서로의 신분을 잘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애 시절 노 관장과 최 회장은 5만 원짜리 금반지를 서로 나눠 낄 정도로 소박하고 풋풋한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두 사람은 1989년에 장녀 윤정씨와 1991년 차녀 민정씨, 그리고 1995년 장남 인근씨 등 1남 2녀를 낳아 길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사법 당국의 수사를 받으며 결혼 생활이 순탄하게 이어지지 않았다.
노 관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외화 밀반출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외화 밀반출 혐의는 무혐의 종결처리됐고, 3,000만 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반지 세트를 뇌물로 받은 혐의에 대해선 인사 청탁 대가라는 점을 알고 되돌려 주었다는 점을 인정받아 수사망에서 벗어나게 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최 회장이 2003년 회계사기, 2013년 횡령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수감 생활을 하게 됐다. 아내 노 관장은 최 회장이 처음 영어의 몸이 됐을 때는 일주일에 세 번씩 면회하고, 공판 때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2013년 9월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최 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선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기도 했다.
겉보기엔 이렇게 애틋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최 회장 수감 이전부터 틈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잦은 의견 대립으로 다툼이 잦았고, 애정 전선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최 회장은 2013년 초 이혼 소송을 준비했다. 하지만 수감되면서 이혼 송사가 미뤄졌다.
수감 시절 마음을 굳힌 듯 최 회장은 2015년 8월 광복절을 맞아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사면을 받자마자 노 관장과 사실상 결별을 선언했다. 석방된 지 넉 달 만인 같은 해 12월 한 언론사에 "내연녀와 혼외자가 있다. 부인(노 관장)과 결혼 지속이 어렵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낸 것. 당시 특사 과정을 잘 알고 있는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창조경제'에 힘써 달라는 뜻으로 특사 대상에 포함했다"면서 "그런데 풀려나자마자 공개적으로 부적절한 연애를 공표해 청와대에서도 어이없어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년 동안 최 회장의 옥바라지를 해왔던 노 관장에 대한 동정 여론이 커지는 반면, 최 회장은 현모양처를 버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SK 속사정에 밝은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 회장은 내연녀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그렇게 공개한 것"이라며 "자신이 지키고 있던 가정을 버린 최 회장에게 배신감을 느낀 노 관장은 곱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후 지루한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최 회장은 2017년 7월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지만 노 관장의 이혼 반대에 부딪혀 조정에 이르지 못하고 합의 이혼에 실패했다. 이듬해 최 회장은 이혼 소송을 제기해 5년 동안 이어진 송사 끝에 34년 동안 이어진 부부의 연을 끊게 됐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부(부장 김현정)는 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은 이혼한다"며 위자료 1억 원을 책정하면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재산 665억 원을 분할하라"고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