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白內障ㆍcataract)은 우리 눈 수정체(카메라의 렌즈 역할)가 뿌옇게 변해 시야가 흐려지고 시력이 떨어지게 만드는 질환이다. 50세 이후 주로 발생하기 시작해 60~70대가 되면 대부분 앓을 정도로 흔하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백내장 유병률은 40대 11.1%, 50대 35.7%이지만 60대는 71.8%, 70대 이상에서는 94.2%까지 높아진다.
이 때문에 백내장은 우리나라 수술 1위 질환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발간한 ‘2021년 주요 수술 통계 연보’에 따르면 49만7,000명이 지난해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10만 명당 938.2명꼴).
백내장은 초기 증상이 없기에 사물이 잘 보이지 않으면 노안(老眼)이라고 여겨 방치할 때가 많다. 하지만 수술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해 치료 시기를 놓치면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안과의사회가 백내장 진행 정도와 수술 시기는 상관관계가 없으며,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는 정도에 따라 의사와 환자가 충분히 상담해 수술 시기를 정하도록 권고한 이유다.
백내장 수술은 혼탁이 생긴 수정체(카메라 렌즈에 해당)를 제거한 후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단초점 렌즈)과 비급여 항목(다초점 렌즈)이 혼재돼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단초점 렌즈는 근거리나 원거리 중 하나의 초점만 교정할 수 있고 수술 후에도 돋보기나 안경을 착용해야 하므로 불편하다. 반면 실손보험 적용을 받는 다초점 렌즈는 근거리ㆍ원거리ㆍ중간 거리 등 모든 거리의 시력을 확보할 수 있고 난시까지 교정할 수 있어 환자들은 당연히 다초점 렌즈를 선호한다.
백내장 수술비는 다초점 렌즈 삽입술 기준으로 눈 하나당 400만~600만 원선이다. 일반적으로 두 눈 모두 수술하므로 1,000만 원 정도다.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서 40만~50만 원 정도 부담하는 단초점 렌즈 삽입술보다 상당히 비싼 편이지만, 최근 실손보험 가입자 상당수가 실손보험금 지급을 믿고 이를 택하고 있다.
보험사들도 그동안 백내장 여부를 깐깐하게 검증하지 않고 의사 진단명과 수술 사실만으로 실손보험금을 지급해왔다. 실손보험 약관에 비급여 항목인 다초점 렌즈에 대해 80~100%의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초점 렌즈를 이용한 백내장 수술이 급증하면서 보험사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백내장 관련 실손보험금은 2018년 2,553억 원에서 2020년 6,480억 원으로 급격히 늘어 지난해에는 1조1,528억 원이나 됐다. 올 1분기에 보험사가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4,57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지난 4월부터 백내장 수술 실손보험 청구 기준을 강화했다. 실손보험금 청구 시 백내장 수술이 필요하다는 검사 결과(세극등 현미경 검사) 등을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는 등 지급 심사를 까다롭게 한 것이다. 수정체 혼탁도가 4~5등급 이상이 아니면 백내장 수술이 필요 없다며 실손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실손보험금 부(不)지급을 둘러싼 보험사와 실손보험 가입자 간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금융 민원 건수는 4만4,33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60건(5.9%) 증가했다. 이 중 손해보험 관련 민원이 40% 이상으로 가장 많았다. 접수 건수는 1만7,79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7% 늘어났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실손보험 약관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경제ㆍ시간적 여유가 없어 개인이 보험사를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실손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한 일부 소비자는 보험사를 상대로 공동 소송을 제기했다. ‘실손보험 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를 통해 공동 소송에 참여한 가입자만도 1,300여 명이나 된다.
최근 판례는 엇갈린다.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지난 8월 보험사가 가입자를 상대로 ‘보험금을 줄 수 없다’며 제기한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기각했다. 보험사는 ‘가입자 A씨의 세극등 현미경(특수 조명 장치와 현미경으로 구성된 검사 도구) 검사상 백내장이 아니다’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지만 법원은 “세극등 현미경을 통한 결과는 조명ㆍ촬영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가장 정확한 검사는 담당 의사가 세극등 현미경으로 육안상 백내장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보험사 손을 들어준 판결도 있다. 대법원은 백내장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일괄적으로 ‘입원 치료’를 인정해 실손보험금을 지급하면 안 된다고 판결했다. H 보험사의 실손보험에 가입한 A씨는 2019년 8월 서울 한 안과에서 노년성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그는 같은 달 16일에 왼쪽 눈, 17일에는 오른쪽 눈에 다초점 렌즈를 넣는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준비에서 끝날 때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그동안 백내장 수술에는 입원 치료를 전제로 하는 포괄수가제(여러 치료 항목을 묶어 진료비를 책정하는 방식)가 적용돼 실제 진료 내용과 상관없이 입원 치료로 인정됐다. 입원 치료는 5,000만 원, 통원 치료는 하루 25만 원까지 받는 상품에 가입했던 A씨는 H보험사에 “입원 치료에 해당하니 보험금 684만 원을 달라”고 했지만, 보험사는 “입원 치료가 아니라 통원 치료”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달리 2심은 “A씨가 수술 준비부터 종료까지 걸린 시간은 2시간 정도였고,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르면 환자가 6시간 이상 입원실에 머물면서 의료진의 관찰을 받았을 때 입원이라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민사2부는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백내장 수술을 받는 환자가 실손보험에 가입했어도 건강보험 비급여 수술비의 상당액을 보험금으로 지급받기 어려워진 것이다.
최근 백내장 수술에 따른 실손보험금을 받지 못한 가입자들이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벌였지만 보험사는 요지부동이다. 금융위원회와 감독당국이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보험사나 가입자가 법원 문을 두드리지 않도록 들쭉날쭉한 실손보험 지급 기준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실손보험금을 꼬박꼬박 내는 ‘선량한’ 가입자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