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입력
2022.12.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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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이맘때가 되면 누구든 늘 마음 한구석이 무엇인가에 쫓기듯 조바심을 내면서 바빠지게 마련이다. 아직도 끝내지 못한 숙제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시간은 자꾸만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갈 길은 아직 먼데, 날이 저물어 난감해하는 나그네의 형상이라고나 할까? 돌아보면, 올 한 해도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 것 같다. 장자(莊子)가 우리의 인생을 빛과 같이 빨리 달리는 천리마가 조그만 틈을 지나가듯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한 '백구과극(白駒過隙)’이란 말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더 절실하게 가슴속으로 다가온다.

지난 주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카타르에서 보내온 '월드컵 16강 진출'이란 큰 연말 선물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 가족도 20년 전 한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맞붙었던 16강전 이후 처음으로 운동경기를 같이 보며 흥분하고, 손에 땀을 쥐면서도 즐겁고 통쾌하게 새벽 시간을 함께 보냈다. 우리뿐 아니라, 한국 축구를 응원하던 사람들은 잠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위안을 받았던 좋은 시간이었다. 운동경기에서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경기에서 승리했다는 단순한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를 얻기 위해 정성을 기울여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성실함과 투지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게 된다. 우루과이전이나 포르투갈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나전에서도 비록 졌지만, 선수들이 경기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이기에 아쉬움이 남음에도 마음에 불편함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중용'에서 "성실함은 사물의 시작과 끝마침이니,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게 된다(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성자물지종시 불성무물)"고 말했다. 성(誠)은 '성실함', '진실함'을 말한다. 어떤 일을 대하는데 성실하고 진실하게 접근하지 않는다면,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진실하고 성실한 그 태도로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우리는 감동과 위안을 받게 된다. 성은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마음자세이고, 출발점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 소식에 정신을 온통 빼앗기고 있을 때, 우리 사회 한편에는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문제에 접근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가족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호소할 곳도 마땅히 없고, 설령 호소를 한다고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언제 그런 참사가 있었냐는 듯이 쉽게 잊혀지고 있다. 재난을 당한 사람만 억울하게 만드는 사회로 또다시 떨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사회적 약자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성실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공감과 연대의식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그 속에서 덧없이 흘러가는 우리의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박승현 (사)나란히 희망철학연구소 철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