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스쿨존'서 9세 초등생 음주차량에 희생... "막을 수 있었다"

입력
2022.12.0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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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서 만취운전... 하굣길 학생 숨져
면허취소 수준 30대 가해자 남성 구속
평소에도 안전 우려... 대책 마련은 미흡
학교 들른 운구행렬에 친구들 울음바다

“얘들아, ○○이에게 마지막 인사하자···.”

5일 오전 9시 40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앞에 검은색 캐딜락 차량이 멈춰 섰다. 사흘 전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섰다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A(9)군의 운구 차량이었다. 장지로 가기 전 마지막 인사를 위해 학교에 들른 것이다. 충혈된 눈의 아버지는 앳된 아들의 얼굴이 담긴 영정을 품에 안고 차에서 내렸다. 학부모와 친구들, 학교 관계자 등 40여 명이 A군을 맞았다. 고사리손으로 국화꽃을 꼭 쥔 친구들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가해자인 30대 남성은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및 위험운전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0.08%를 웃돌 정도로 만취 상태였다.

B씨는 사고 직후 인근 자택 주차장으로 들어갔지만 경찰은 뺑소니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진술과 차량 블랙박스,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종합해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결론 냈다. 사고 현장으로 바로 되돌아온 점이 고려됐다.

사고는 예견돼 있었다.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들은 오래전부터 등하굣길 안전이 우려됐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취재진이 살펴보니 이곳은 초등학교 바로 앞인데도 인도가 따로 없었다. 더구나 내리막 경사길이라 평소에도 차량들이 속도를 내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A군 운구 차량이 도착하기 직전에도 차량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학교 측은 관계 당국에 꾸준히 개선 요청을 했다. 2019년 10월부터 관할 구청과 경찰서, 도로교통공단 등에 시야를 가로막는 전봇대 등을 옮기고, CCTV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서울시도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좁은 이면도로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2022년 어린이보호구역 종합관리대책’을 통해 개선이 필요한 구역에 언북초를 포함시켰다.

학부모들 역시 구청에 일방통행 구역으로 지정하거나 인도를 만들어 달라고 여러 번 민원을 냈다. 그때마다 자치구 측은 주민들이 반대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도로 폭이 좁아(약 4m) 인도 설치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일방통행로가 되면 우회하는 차량이 많아져 교통 흐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였다. 시는 제한속도만 시속 30㎞에서 20㎞로 낮췄다. 40대 학부모 정모씨는 “평소에도 사고가 종종 나던 곳이라 녹색어머니회와 방과 후 선생님들은 특히 하교 때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2020년 시행된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ㆍ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스쿨존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단속카메라는 학교 정문에만 설치됐다. 후문 단속 장비는 방범용 CCTV 한 대가 전부였다.

사고 현장은 A군을 그리워하는 메시지로 뒤덮였다. 바닥에는 생전 고인이 좋아했을 젤리와 초콜릿 등 간식이 놓여 있었다. 색색의 포스트잇에도 삐뚤빼뚤한 손 글씨로 “편하길 바레(바라)” “형아 천국 가세요” 등의 추모 글귀가 적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A군의 짝꿍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잘 지내, 사랑해”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관계 당국과 어른들의 무관심에 또 어린 생명이 꽃도 피우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됐다.



김소희 기자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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