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몰이냐, 정책판단이냐... 서훈 영장심사 역대 최장시간 '난타전'

입력
2022.12.02 20:00
10시간 진행... 박근혜 기록 넘어

남북관계를 의식해 '월북 몰이'로 진실을 은폐한 사건인가, 첩보를 토대로 상황을 관리한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정책적 판단인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핵심 인물인 서훈(68) 전 국가안보실장이 구속 기로에서 사건의 성격을 두고 검찰과 법정에서 난타전을 벌였다. 직권남용 및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를 받는 서 전 실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김정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2일 오전 10시부터 10시간 가량 진행됐다. 역대 최장 기록인 박근혜 전 대통령 영장심사 때 걸린 8시간 40분을 갈아치울 정도로 양측은 치열하게 부딪쳤다.

검찰은 136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를 토대로 서 전 실장이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를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고 관련 정보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이대준씨 사망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새벽 1시 주재한 관계장관회의를 문제 삼았다. 검찰은 회의가 끝난 뒤 '자진 월북'이라는 정부 차원의 방침이 나왔고, 국방부와 국가정보원 등 관계부처에서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 공유된 이씨 관련 SI(특별 취급 정보)와 관련 보고서 등 총 107건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국방부 종합보고서에 이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담기고, 해경이 월북 정황을 드러내도록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안보실 지침에 따른 것으로 봤다.

검찰은 '월북 몰이'의 동기로 남북관계 개선을 들었다. 검찰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과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당시 남북관계를 구속영장에 자세히 기재하는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몰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 전 실장이 당시 최종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서 전 실장과 사건 관련자들과의 관계, 올해 10월 국회 기자회견과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한 점을 들어 증거 인멸 가능성이 크다며 신병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 전 실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변호인들은 법정에서 "월북 몰이와 은폐 시도 지시는 전혀 없었다"고 맞섰다. 국가안보와 관련한 급박한 상황에서 수집된 첩보를 토대로 '정책적 판단'을 했을 뿐이란 것이다. 서 전 실장 측은 청와대는 당시 이대준씨 실종 직후 실족과 극단적 선택, 월북 기도 등 3가지 경우의 수를 염두에 뒀으며, 북한 수역에서 이씨가 구명조끼를 입고 부유물에 탄 채 발견됐고, 월북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돼 월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상황을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씨 관련 첩보를 인지한 인원이 300명이 넘는다는 점을 들어 "은폐는 상상할 수도 없다"고 했다.

서 전 실장 측은 검찰이 제기한 월북 몰이 동기와 관련해서도 "자진 월북자를 북한이 사살했다고 밝히면 북한 체제의 잔혹성만 드러낼 뿐인데, 이것이 어떻게 남북관계를 고려한 조치가 될 수 있느냐. 앞뒤가 맞지 않다"고 했다.

검찰이 서 전 실장의 신병을 확보하면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도 살펴볼 예정이다. 문 전 대통령은 전날 검찰을 향해 "도를 넘지 않길 바란다"면서 "당시 대통령이 국방부 등의 보고를 듣고 최종 승인했으며, 특수정보(SI)도 직접 살핀 뒤 안보부처들 판단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서 전 실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검찰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 조사를 끝으로 주요 피의자를 일괄 기소하며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손현성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