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굉장히 중요한 선수고, 당신의 나라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부상을 당하고 지난 2주간 어땠나요?"(영국 기자) "솔직히 정말 악몽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세요, 저는 이 자리에 있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해왔어요. '어메이징한 나라'를 위해 뛸 수 있는 것은 굉장히 큰 영광이기 때문입니다."(손흥민)
손흥민(30·토트넘)의 인터뷰는 늘 인상 깊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하는 경우엔 더 그렇다. 지난달 24일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우루과이와 경기를 마친 손흥민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영국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손흥민이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어메이징한 나라"라고 언급한 건 영국 기자의 앞선 질문 때문이었다.
해당 기자는 한국과 우루과이의 무승부 결과가 "한국에 긍정적이지 않나"라고 물었다. 질문을 듣던 손흥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잠시 생각하더니 "아니다, 둘 다에 긍정적이다"라고 받아쳤다. 우루과이의 전력을 우위에 두고 은근히 대한민국 팀을 얕잡아 보는 속내가 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손흥민은 반격하며 이렇게 답을 이어갔다. "이번 무승부는 우리에게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에 약간의 부스터 역할을 할 뿐이다. 우리는 아주 놀라운 능력을 가진 어린 선수들이 있다. 나는 항상 선수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 기자는 손흥민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 자존심은 바로 애국심을 근간으로 한다. 그가 안면골절 부상을 입고도 '마스크 투혼'을 펼친 이유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다수가 '투혼' '투지'라는 단어를 격하게 실감했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헤더골을 시도하거나 오버헤드 킥으로 공중에 몸을 띄우는 손흥민의 모습은 아찔할 정도였다. 동점이 간절하던 가나전(2-3 패)에서 마스크가 위로 올라가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머리를 공에 갖다 댔다.
심지어 3일 오전 0시(한국시간) 사활을 건 포르투갈전을 위해 헤더 훈련을 하는 손흥민이 목격됐다. 손흥민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16강 진출 가능성이 열리는 최종전을 대비해 훈련장에서 마스크를 쓴 채 공을 머리로 받아냈다. 2주 전만 해도 "다 좋은데 아직 헤딩은 못한다"라던 그였다. 회복돼 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시그널일 수도 있지만 더 큰 부상 위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손흥민의 투지는 대표팀 전체에 자극이 되고 있다. 부상으로 출전이 불투명한 선수들조차 "경기에 뛰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한다.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부상으로 월드컵 무대를 아직 밟지 못한 황희찬(26·울버햄튼)은 "다쳐도 좋으니 뛰겠다"고 했단다. 황인범(26·올림피아코스), 김민재(26·나폴리), 김진수(30·전북) 등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심상치 않은 건 사실이다.
한국 선수들 특유의 집념과 투지가 울림을 준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이들을 원망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머리가 깨지고 종아리가 찢겨도 90분을 뛰겠다는 이들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쏟아내니 말이다. 그런 건 소위 말하는 '국뽕'에 대한 경계와도 관련 없다. 그저 어떤 대상을 겨냥한 배설일 뿐이다. 우리가 과연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쏠 수 있을까. 그렇게 국가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질 수 있을까.
강은영 이슈365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