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블랙박스] 졌지만 잘 싸운 대표팀... '반대 전환 크로스' 기회 더 잘 살렸더라면...

입력
2022.11.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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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전 축구대표팀 감독

감독이 쓰기엔 이상한 표현이지만, 졌지만 잘 싸운 경기였다.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경기에 임했던 모습이 축구팬들에게 울림을 줬을 것이라 믿는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가나전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줬다.

한국 대표팀은 전반 20분까지 상대를 몰아쳤다. 이때 한국이 반대편으로 전환하는 크로스를 여러 차례 올리고도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보통 우리 선수들이 경기장 반대편에서 길게 크로스를 올리면 상대 풀백이 우리 팀 윙 포워드에게 붙어야 한다. 그런데 가나 풀백들은 우리 선수들을 강하게 압박하지 않았다. 실제로 대표팀은 후반전 이 부분을 파고들어 동점골까지 뽑아냈다. 한국이 상대의 빈틈을 좀 더 일찍 간파해 선취점을 올렸다면 경기 양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또 하나 아쉬운 부분은 상대의 지역방어를 많이 이용하지 못한 점이다. 가나는 한국 선수들에게 강한 압박을 들어오지 않았다. 지역방어를 많이 서다 보니 우리 선수들이 공간을 만들어 낸 뒤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특히 이강인은 강하게 부딪치는 것보다 이런 수비에서 장점을 발휘하는 선수인데 출전 시간이 짧았다. 그럼에도 프리로 많은 공을 받으면서 매우 잘해줬다. 후반 29분 프리킥이 골로 연결됐다면 금상첨화였다.

실점 상황에서 운도 따르지 않았다. 첫 번째 골은 혼전 상황에서 나왔고, 세 번째 실점은 이냐키 윌리엄스의 헛발질 실수가 오히려 상대 기회로 이어진 케이스였다. 그렇지만 한국이 상대 높이에 대비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가나는 한국보다 높이에서 앞선다고 판단하고 크로스와 세트피스 등의 상황에서 공을 우리 골키퍼에게 적극적으로 붙여 놨다. 이에 대한 대비가 잘 안 됐다.

1차전과 다른 선발 명단도 눈에 띄었다. 선수 구성에 약간의 변화를 줘 상대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권창훈과 작은 정우영은 각각 프랑스 리그1과 독일 분데스리가를 경험했기 때문에 파울루 벤투 감독이 큰 경기에 믿고 내보낸 것 같다. 새로운 스타팅 멤버 중 조규성은 자신의 역할을 정말 잘해줬다. 월드컵 두 번째 경기에 나선 선수인데도 헤더, 슈팅, 골 결정력이 매우 좋았다. 권창훈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부터 쭉 봐왔던 선수인데, 가나전에서는 몸이 80% 정도만 올라온 듯 보였다. 작은 정우영도 아쉬웠다.

이제 다음 상대는 포르투갈이다. 감독 없이 치러야 하는 경기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퇴장 감독은 지정된 구역 외에는 출입이 안 되고 무전기 등도 사용할 수 없다. 하프타임 때 라커 룸도 못 들어간다. 선수들이 위축될 수 있지만 오히려 똘똘 뭉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도 본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독일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포기하면 안 된다. 공은 둥글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손흥민 정우영 김영권 등이 독일을 이겼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를 만들면 좋겠다. 태극전사들이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길 희망한다.

신태용 전 축구대표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