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죽음의 조'가 아니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독일을 2-1로 꺾은 일본이 스페인에 0-7로 무너졌던 코스타리카에 덜미를 잡혔다. 물고 물리는 결과가 이어지면서 E조 16강 경쟁 판도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코스타리카는 27일 카타르 알라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E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후반 막판 결승골을 터뜨리며 1-0 승리를 거뒀다. 이날 두 팀은 초반부터 '신중 모드'였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독일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16강 희망을 밝혔던 일본은 전반부터 실점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짰다. 일본을 반드시 꺾어야 했던 코스타리카 또한 수비를 견고히 한 다음 공격 한 방으로 상대 골문을 노리는 모습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데이터에 따르면 전반 볼 점유율은 코스타리카가 52%로 앞섰지만, 일본과 코스타리카의 패스 성공률(86%-87%), 활동 거리(52㎞-51㎞)는 초박빙이었다. 코너킥은 일본만 한 차례 있었고, 오프사이드는 두 팀 모두 한 차례도 없을 정도로 수비에 치중한 경기였다.
승부수는 후반 시작과 함께 두 명의 선수를 교체한 일본이 먼저 띄웠다. 일본이 후반 1분 가마다 다이치(프랑크푸르트)의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포문을 연 직후부터 5분 사이 아사노 다쿠마(보훔), 모리타 히데마사(스포르팅), 엔도 와타루(슈투트가르트)의 릴레이 슈팅이 터졌지만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후반 16분 엔도가 중앙으로 돌파하던 과정에서 셀소 보르헤스(알라후엘렌세)의 파울로 프리킥을 얻었다. 페널티 아크 정면에서 찬 소마 유키(나고야)의 오른발 프리킥은 골대를 훌쩍 넘겼다. 후반 25분에도 비슷한 위치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은 일본은 이마저도 코스타리카 수비 벽에 막혔다.
코스타리카를 쉴 틈 없이 몰아붙이던 일본은 그러나 수비 실책 한 방에 무너졌다. 슈팅 수 20-7로 앞서던 후반 36분. 코스타리카 공격을 저지한 뒤 공을 걷어내려던 히데마사의 킥이 코스타리카 옐친 테헤다(에레디아노)의 발에 걸렸고, 테헤다는 우측 공간을 파고들던 케이셰르 풀레르(에레디아노)에게 연결했다.
풀레르는 모처럼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상대 골키퍼 키를 넘기는 환상적인 오른발 슛으로 결승 골을 만들어냈고, 결국 코스타리카의 1-0 승리로 끝났다. 12월 2일 오전 4시 동시에 열리는 E조 3차전에서 일본은 스페인을, 코스타리카는 독일을 반드시 꺾어야 하는 판이 됐다.
한편 이날 관중석 곳곳에서는 욱일기가 펼쳐져 눈살을 찌푸렸다. 경기 전부터 욱일기를 걸어 두려다 제지를 당한 일본 팬도 있었지만, 일부 관중들은 욱일기를 펼쳐들며 일본을 응원했다. 욱일기는 일본이 19세기 말부터 태평양전쟁을 비롯한 아시아 침략 전쟁에 사용해 온 군대의 깃발로,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