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이대로 방치할 건가

입력
2022.11.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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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 ‘폐지’ 공방하다 이제는 방치 
출범 2년 미성숙 조직에 실력만 요구 
인력기능 강화한 뒤 제대로 평가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두 개 정부조직의 폐지를 거론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아예 공약에 포함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문제점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개선되지 않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폐지 추진 방침을 밝혔다. 취임 이후 여가부는 여성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지 수순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공수처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이 없다. 민주당도 개입에 소극적이다. 공수처는 그렇게 여론의 관심에서 사라진 뒤 존재마저 희미해져 버렸다.

공수처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복잡한 생각은 대통령직인수위에서 그 일단이 드러났다. 인수위 간사였던 이용호 의원은 공수처와 간담회를 한 뒤 “공수처는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지 못하게 돼 있는 독립기관이고 폐지는 국회 차원의 문제”라고 했다. 실제 공수처는 정부조직법상 부처가 아닌 별도 특별법에 근거한 조직으로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의 감독ㆍ통제를 받는 기관이다. 대통령이 존폐를 결정할 수 없는 구조라는 의미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온 윤 대통령 또한 이런 사정을 모를 리 만무하다. 후보 시절 정치공세나 선거전략 차원에서 공수처 폐지를 주장한 건 아닌지 궁금할 따름이다.

대선 과정에서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 부실수사와 고발 사주, 판사 사찰 문건 불법 작성 의혹 등 사사건건 윤석열 후보를 겨냥하다 보니 당시 야당에선 “공수처가 아니라 ‘윤수처(윤석열 수사처)’”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야당 후보를 겨눈 칼날은 그리 날카롭지 못했고 이제는 조준마저 불가능해졌다. 현직 대통령 형사 소추가 불가능한 마당에 수사의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칼자루를 잡게 된 현재 권력이 칼날을 벼려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의향도 없다. 사실상 방치한 상태다.

민주당도 손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검찰 견제 기구라는 명분으로 공수처 설립을 강행한 뒤 정권이 바뀌자 열정이 식어 버렸다. 윤석열 정부의 외면 속에 공수처가 기능부전 상태에 빠져 있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지난 대선 야당 후보를 겨눴던 공수처의 칼날이 언제 자신들을 겨냥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모를 바 아니지만, 공수처 산파로서 무책임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공수처 잘못이 없다 할 수 없다. 신중한 고려 없이 대선 국면에 휘말려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만 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맡겨진 수사 또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수사력 빈곤만 노출했다. 지난해 말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 논란은 수사기관의 존립 근거마저 의심하게 했다. 독립 수사기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간과한 잘못이 크다.

정치적 책임과 공수처의 잘잘못을 떠나 설립 2년도 안 된 조직을 방치하는 건 국가적 낭비다. 정치권 외면으로 공수처 기능이 소멸한다면 정치적 책임이 가볍지 않다. 당장 공수처는 수사인력과 함께 행정직원 부족으로 업무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독립 청사가 없어 수사의 기밀성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지난해 공수처가 이성윤 당시 서울고검장을 수사하면서 공수처장 관용차를 제공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데, 독립 청사 없는 수사기관의 설움이라는 공수처 항변에 일리가 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부와 여당은 공수처를 폐지할 현실적 방법이 없고, 민주당은 공수처 출범에 무거운 책임이 있다. 일부에선 공수처의 수사력 강화를 위한 자립ㆍ자강을 강조하지만 성급한 주문이다. 인력과 기능을 강화하는 등 제대로 된 수사 여건을 보장한 뒤 수사 성과를 평가하는 게 우선이다. 여야가 공수처 신청사 설립 예산을 둘러싸고 기싸움을 벌일 게 아니라 공수처 기능 정상화에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김정곤 뉴스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