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그놈이 산다고?" 성범죄자 이사 때마다 동네가 발칵

입력
2022.11.27 07:00
'수원 발바리' 박병화 집 앞 매일 퇴거집회
조두순 거주지 감시에 지자체 4억 투입
인권 논란에 보호수용제도 추진 번번이 무산
전문가들 "범죄자 인권 위해서라도 도입해야"

#2020년 12월 성범죄자 조두순의 출소 이후 경기 안산시는 2년째 곤욕을 치르고 있다. 조씨가 안산 단원구 와동에 주거지를 마련한 사실이 알려진 후 경찰은 그 주변에 폐쇄회로(CC)TV 30여 대를 설치했지만 인근 '아이 있는 집'들이 이사 가며 동네 어린이집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안산시가 자체적으로 채용한 순찰요원 9명도 24시간 교대로 동네를 순찰하지만 주민들 불안을 낮추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21일 조두순의 이사 소식이 알려지며 또 한번 안산시가 술렁였다. 기존 월세 계약이 28일 만료돼 인근 선부동으로 이사를 준비했는데, 주민들이 기자회견까지 열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조두순의 부인이 남편을 '회사원'으로 속여 월세 계약한 사실이 알려지며 보도 사흘 만에 계약 파기됐다.

#지난달 31일에는 경기 화성시가 술렁였다. '수원 발바리'로 불린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가 출소 후 화성시 봉담읍 대학가 원룸촌에 거주지를 마련하면서다. 1,500가구가 사는 원룸촌에서 박병화의 거주지는 인근 대학과 120m 떨어져 있다. 500m 떨어진 곳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있다. 박병화는 교정 당국에 "한 달 동안 외출 계획이 없다"고 밝힌 후 두문불출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화성 주민들은 그의 집 앞에서 퇴거 요구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집주인은 "박병화의 모친이 범죄 이력을 숨기고 대리계약한 건 기망행위"라며 퇴거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그달 중순에는 미성년자 연쇄 성폭행범 김근식이 출소 후 갱생시설인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경기북부지부에 입소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경기 의정부시가 들썩였다. 갱생시설은 출소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직업훈련을 하는 등 사회복귀를 돕는 곳으로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를 제외하고는 바깥 외출이 자유롭다.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 반발이 빗발쳤고, 법무부가 외출 제한 시간을 오전 9시까지로 연장했지만, 김동근 의정부시장은 갱생시설 인근 도로를 폐쇄해 김근식이 오는 걸 막겠다고 나섰다. 출소 전날인 17일 김근식의 다른 범행이 발각돼 재구속되며 거주지 논란은 일단락됐다.

성범죄 상습범의 출소 소식이 알려질 때마다 그들이 사는 지역은 몸살을 앓는다. 거주 이전의 자유에 따라 만기 출소한 성범죄자는 자신의 거주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지만 재범을 우려한 주민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주민 불안에 안산시가 조두순 관련 대책으로 매년 투입하는 예산은 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성범죄자가 거주할 때는 이런 예방 조치를 마련하는 것도 어렵다. 여성가족부 성범죄자 알림e사이트에 공개된 전국 성범죄자 수만 3,257명에 달한다.

만기 출소하면 100% 누리는 '거주 이전의 자유'

출소한 성범죄 전과자의 주거를 제한할 법적 근거가 현재 우리나라에는 없다. 전과자 신상과 주소지를 공개하고 성충동조절 치료와 전자장치 부착, 외출시간 제한 등으로 관리감독하는 것이 허용된 조치다.

미국처럼 아동 성범죄자 거주를 일부 제한하는 제도(제시카법)를 갖춘 나라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거주 이전의 자유'라는 헌법상 가치와 부딪혀 번번이 입법에 실패했다. 2,000만 명이 수도권에 모여 사는 우리나라에 같은 규정을 적용하기는 현실상 한계도 있다.

이런 문제를 우려해 정부는 2010년, 2014년, 2016년에 보호수용제도를 꾸준히 추진했지만 인권단체 등의 반대로 관련 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보호수용제는 흉악범 중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범죄자에 대해 형기를 마친 후 별도의 수용시설에서 일정 기간 격리하는 제도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재범 위험성을 판단하는 구체적 기준이 없고, 이중처벌 문제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했다.

잠잠했던 보호수용제 논의가 다시 활발해진 건 조두순 출소를 앞둔 2020년 무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2회 이상 살인 △3회 이상 성폭력 △13세 미만 대상 성폭력·중상해 등 범죄자를 대상으로 보호수용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중 13세 미만 성폭력 범죄자에 한해 '형 선고 후에도 치료감호를 선고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관련법 개정안이 조두순 이사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13세 이상에 성범죄 저지른 자...출소 후 막을 방법이 없다

치료감호는 재범 위험성이 있는 약물중독·소아성기호증(소아성애) 등 성향의 범죄자를 국립법무병원 등 시설에 구금한 뒤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는 처분이다. 법원 판단에 따라 치료감호 시설 수용을 2년 단위로 횟수 제한 없이 연장할 수 있게 됐지만, 20대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박병화의 재범 우려는 법 개정에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13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의 치료감호제는 김근식을 염두에 두면 (김씨에게는) 나름 쓸모 있을 것이지만 대다수 성범죄 상습범은 박병화 같은 부류"라며 "조두순의 피해자 중 성인도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는 범죄자 인권보다 잠재적 피해자 안전망 구축에 더 무게를 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미국은 1990년대 성폭력 흉악범 재범방지법(Sexual Violent Predator Law‧SVP법)이 제정돼 성폭력범은 출소 후에 민간위탁 치료프로그램에 강제 참여하도록 한다. 대부분의 주는 재범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까지 이들을 석방하지 않는다. 치료 프로그램 참여 기준은 주마다 다르지만 대개 △성적인 폭력 범죄로 선고받은 자 △성폭력 행동 결과로 1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자 △정신이상자로 진단받은 자 등이다.

오스트리아, 프랑스도 △강력범죄 △정신장애와 관련된 범죄 등을 저지르고 법원이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한 범죄자의 경우 1년마다 갱신을 통해 무기한 수용시설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스위스는 재범 위험성이 있고, 지속적인 치료가 불가능할 경우 무기한 격리가 가능한 무기감호까지 도입했다.

"보호수용제도 이중처벌 아냐...범죄자 인권 위해서라도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성범죄 재범 우려를 낮출 보호수용제를 국내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성범죄 상습범에게 출소 후 완전한 자유권을 주기보다 재범 위험성이 낮게 평가될 때까지 보호수용시설에서 치료받으며, 일정 수준의 자율권을 주는 게 이들의 인권을 위한 처사라고도 지적한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범 우려를 낮추는 편한 방법은 성범죄 유형 상한을 현재 30년에서 60년쯤으로 대폭 올리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그러나 "양형 상한 올리고 (여러 건의 범죄에 대해) 병합 과중하면 90년까지 가능한데, 10대에 성범죄 저지르면 영원히 사회로 못 나온다는 말"이라며 "이런 방법보다는 형벌을 죗값만큼 받게 하고, 재범 위험성은 보호수용제도를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범죄 재범에 대한 국민 불안, 늘어난 평균수명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 정부나 국회가 성범죄 양형 상한선을 올리는 방안을 논의할 수밖에 없는데, 양형을 늘리기보다 일정 수준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보호수용제도를 도입하는 게 범죄자 인권을 위한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승 연구위원은 '이중처벌' 논란은 교도소와 분리된 시설에서 법무부가 아닌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이 주축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하면 해결될 수 있을 거란 의견도 덧붙였다.

이수정 교수 역시 "미국의 성범죄자 치료프로그램은 민법의 적용을 받는다. 형벌이 아니라, 법원이 사회로부터 재범위험을 방어할 목적으로 출소자의 입원을 명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출소 후 이사 갈 때마다 주변 반대에 시달리고, 생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또다시 사회 위험 인자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며 "성범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출소자 관리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