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려면 1시간, '시민의 발'에 발 묶인 시민들

입력
2022.11.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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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30)씨가 경기 시흥시 하늘휴게소 버스환승센터에 도착한 것은 지난 23일 오전 6시 30분. 인천에 살면서 판교로 출퇴근하는 이씨는 이곳에서 판교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대기줄이 그다지 길지 않았는데도 이씨는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난 7시 40분경이 돼서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차창 밖을 보니 칠흑 같던 새벽 하늘이 그새 환해져 있었다.

지난 18일부터 고속도로 구간을 운행하는 경기 광역버스 중 입석을 허용했던 146개 노선 1,473대마저 입석 탑승을 금지하면서 승객들이 이미 만석인 채로 도착한 버스를 속절없이 보내는 일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입석 금지 이전 환승센터에서 10분 정도 기다렸다 버스를 타곤 했던 이씨도, 이젠 1시간 넘게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됐다.

같은 날 경기 안양시 평촌동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탑승 대기줄 맨 앞에 서 있던 김현선(54)씨는 오전 8시 30분부터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해 9시 10분경 버스에 겨우 올랐다. '러시아워'가 어느 정도 지난 시간이었지만 오는 버스마다 좌석 수 표시등은 '0'을 가리켰다. 좌석이 훨씬 많은 2층버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나마 김씨는 운이 좋은 편, 바로 뒤에 서 있던 승객들은 그로부터 20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예비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직장인의 험난한 여정은 퇴근길에 다시 반복된다. 22일 저녁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의 한 버스 정류장에선 오후 6시 이전부터 긴 대기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도 워낙 승객이 많은 정류장이었는데, 입석 금지 이후로 대기줄 줄어드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오후 7시까지 대다수 버스가 무정차 통과했고, 간혹가다 운 좋은 사람만 남은 한 자리를 겨우 차지하는 정도였다.

정부와 지자체는 입석 금지 조치로 인한 시민 불편을 줄이기 위해 대체 교통수단 이용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의치 않다. 지하철과 대체 버스 노선이 발달한 지역은 그나마 여파가 덜 하지만, 마땅한 대체 수단이 없는 곳은 그야말로 '출퇴근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고속도로 입석 금지 조치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시행됐다. 그러나 당시 대안이 없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면서 유야무야됐다. 그로부터 8년, 관련 대책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지만 충분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고, 결국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입석 금지가 다시 시행됐다.



시민들은 입석 금지 자체는 환영하지만, 사전 대책 마련이 미흡한 점은 문제로 지적했다. 김씨는 “예전(2014년)에도 똑같았다”며, “이미 좌석이 다 차서 오기 때문에 정류장에선 아예 탑승이 불가능하다. 배차 간격을 더 줄여주든가 중간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추가해주든가 했어야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자체와 버스 업체는 이번 조치에 대한 대안으로 예비버스와 전세버스를 15대를 우선 투입했다. 그러나 차량과 기사 수급 문제로 목표 증차 수준인 68대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로 탑승에 지장이 생긴 일 평균 탑승객은 지자체 추정 2,925명으로 목표 증차 수송 인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앞 정류장에도 대기 인원이 많은 출근 시간 특성상, 중간 정류장 승객들은 여전히 탑승 지연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 변화로 인한 불편을 특정 구간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감당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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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