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여러분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즉시 코로나19 백신을 맞으세요. 이것이 제가 드리는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3년간 미국 코로나19 대응을 이끌어온 ‘방역 사령탑’ 앤서니 파우치(81) 국립 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백악관을 떠나는 순간까지 미국인들에게 당부한 것은 ‘백신 접종’이었다. 그는 코로나19 백신 안전성과 효능을 재차 역설하는 한편, 백신이 과학이 아닌 정치 영역으로 변질된 점에 아쉬움과 우려를 드러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파우치 소장은 이날 오후 퇴임 전 마지막 백악관 브리핑에 나섰다. 그는 다음 달 54년 공직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소회’나 ‘퇴임의 변’이 나올 것이라는 취재진의 예상과 달리, 파우치 소장은 짧은 인사말을 건넨 뒤 곧바로 백신 부스터샷(추가 접종) 접종을 호소했다. 그는 “백신은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며 “최근 데이터를 보면 백신을 맞은 사람이 변이 바이러스로 사망할 위험은 미접종자보다 14배 낮다”고 주장했다. 또 코로나19 백신 효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는 만큼, 빠른 추가 접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신의 정치화’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파우치 소장은 많은 사람들이 이념적 이유로 접종을 거부한 점을 거론하며 “의사로서 누구도 코로나19에 감염돼 입원하거나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공중보건과 관련 없는 정치 분열과 이념 차이 때문에 백신을 맞지 않는 걸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라며 “당신이 극우 공화당원이든 극좌 민주당원이든 나에겐 아무 차이도 없다”고도 말했다. 과학이 아닌 정치적 잣대로 인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꺼리는 행태가 가장 큰 도전이었다는 얘기다.
코로나19 발병 초기부터 △백신 접종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 과학적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파우치 소장은 의료 전문가 조언을 무시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어떤 것을 유산으로 남기길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쳤다. 사람들이 내가 지난 세월 매일 해왔던 것을 기억해주길 바란다”는 짧은 은퇴 소감을 밝혔다.
파우치 소장은 1984년부터 38년간 NIAID 소장을 역임했다. 그가 보좌한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7명에 달한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에볼라 바이러스 △지카 바이러스 △탄저병 공포 사태 등 각종 위기 속에서 미국 정부 대처를 주도한, 말 그대로 미국 ‘감염병과의 전쟁 산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