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제가 참여하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 마을 공동체에서 '공릉동 꿈마을 포럼' 발표가 있었습니다. 서울정민학교(공립 지체 장애 특수학교)의 발제 시간에 '무장애 숲길'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정민학교 중증장애인을 휠체어에 태우고 한 번에 수십 미터 경사로를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경사로 중간에 쉴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무장애 숲길 경사로에는 중간 쉼터가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지극히 비장애인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방을 운영하니, 소설을 자주 읽게 됩니다. 특히, 과학을 좋아하는 상경계 전공자로서 김초엽 작가를 좋아합니다.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과학적 근거가 있어 보이는 소설의 전개가 저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든요.
'사이보그가 되다'는 막연하게 과학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자마자 김초엽 작가의 청각 장애를 알게 됐습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작가이자, 인권변호사, 배우인 휠체어 타는 김원영 작가의 삶도 함께 알게 되었습니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사회적 약자이자 다름(장애)을 가진 작가의 작품이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넓은 시야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사회생활에 관한 불편함이나 잘못된 것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초엽, 김원영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릅니다. 자신들이 경험했던 차별, 차이, 다름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인간의 몸이 과학과 어떻게 만나서 보완하고, 증강하는가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는 많은 화두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김초엽 작가의 보청기처럼 몸에서 쉽게 떨어져 나가고, 신체 어디와도 완전히 이어지지 않지만, 종일 소리 감각을 제어하는 기계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또 의족 판결 사례에서 논란이 된 의족이 단지 신체를 보조하는 기구가 아닌 신체의 일부인 다리를 기능적, 물리적, 실질적으로 대체하는 사례는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영화 속 사례처럼 아이언맨 슈트(워 머신 주인공은 나중에 장애가 생겨서 슈트가 보완의 역할도 한다)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톰 크루즈가 입는 슈트는 인간의 능력을 증강하는 역할을 합니다.
책을 읽으며 장애인들이 가진 장애를 치유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다름으로 보는 관점을 많이 생각합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뿐 아니라 여성, 성소수자, 재소자,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사는 이들의 다름을 어떻게 바라볼지,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회적 시설이 진정으로 그들을 위한 것인지를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 일상에서 장애인을 위한 주차장이나, 화장실, 경사로, 엘리베이터가 정말로 장애인을 위한 것인지를 바라보게 하고, 집 안에 있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오히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고, 소외시킨다는 것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누군가는 계단으로 올라가고 누군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집 구조'가 오히려 가족 간의 소외를 불러오는 것이라는 이야기에서는 단순히 좋은 시설을 투자하는 것만이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함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수의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값비싼 기술 문제나, 실질적인 유용성보다 보이기 위한 (혹은 장애를 감추기 위한) 기술 선호의 문제 등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에 비해 마주하는 장애인이 적은 것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꼭 치료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거나, 숨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장애를 함께 나누고, 서로 다름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요? 책을 읽으며 조금 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