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추가 더 맵다'는 속담은 몸집 작은 사람이 큰 사람보다 재주가 더 뛰어나고 야무진 경우에 쓰인다. '큰 것이 더 좋다'는 고정관념이 일을 그르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원전을 점점 더 크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57년 가동한 미국의 시핑포트 원전은 전기 출력이 60메가와트(㎿)에 불과했지만,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원전인 프랑스 EPR는 1,650㎿로 30배 가까이 커졌다.
그런데 최근 원전산업 현장에서 대형 원전보다 발전량이 적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이 화두다. 원자력 선진국이 앞다퉈 70여 종 이상의 SMR를 개발하고 있다. 바로 사업화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형화는 원전의 전력생산 단가를 낮추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1기를 짓는 데 들어가는 초기 투자비용은 크다. 복잡한 설계 때문에 인허가 불확실성이 커서 당초 계획보다 공사기간이 지연되기 쉽다. 원전 건설프로젝트의 사업 위험(business risk)이 높아져 민간에서는 투자를 꺼렸고, 대다수 원전 건설사업은 국가 주도로 이뤄졌다.
사업구조를 바꾸기 위해 SMR는 원전 출력을 줄이면서 안전성을 높여 대중 수용성을 높이고, 초기 투자 규모를 줄였다. 설계를 단순화해 건설 기간도 줄였다. 대형 원전의 전기 생산비용보다 조금 비싸지만, 화석연료 발전보다는 싸거나 대등한 수준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덕분에 외국의 SMR는 민간기업 참여도 활발하다.
SMR는 출력 조절이 용이해 태양광, 풍력 비중이 커질 전력시장에서 완충재가 된다. 열 공급이나 수소생산도 가능하다. 이에 미국 정부는 SMR 개발을 적극 지원하는데, 뉴스케일사의 SMR 첫 호기 건설 프로그램의 투자비 절반을 지원한다. 캐나다 정부는 SMR 실증을 위한 부지를 제공하며 국제 개발자들을 불러들인다.
우리나라도 지난 정부에서 기획을 시작하고 이번 정부가 확정한 혁신형 SMR 개발 프로젝트를 내년에 시작한다. 그간 기술개발 경험을 잘 활용한다면 단시간에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 SMR 개발사업의 예산을 전액 삭감해 사업을 백지화하자고 주장한다. SMR가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가 없고 대형 원전보다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온실가스가 발생하지 않는 원전이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가 없다는 근거가 무엇인가. 가격이 비싸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당혹스럽다. 고급 승용차는 버스보다 단가가 높으니 수출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이런 억지는 원자력을 정쟁의 도구로 삼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은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중요한 에너지원이며 원전 산업은 수출 효자산업이자 미래 먹거리다. 국내 원전 산업 정상화에 가장 시급한 것은 탈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