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댄 적도 '루사일의 기적'에 기뻐했다... 아랍은 지금 축제 분위기

입력
2022.11.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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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아르헨전 승리에 공휴일 선포
2030 대회 노리는 무함마드 왕세자도 미소
사우디와 전쟁 치른 예맨 반군도 축하
두바이 국왕 "아랍에 기쁨을 줬다"

'루사일의 기적'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권 전체가 축제 분위기다. 사우디와 오랜 기간 전쟁을 치렀던 예맨 반군도, 단교했던 카타르도 중동 축구의 '매운맛'을 보여준 사우디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우디는 22일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기적 같은 2-1 역전승을 거뒀다. 36경기 연속 무패를 달리던 '골리앗' 아르헨티나를 '다윗' 사우디가 무너뜨리자 아르헨티나의 승리를 점쳤던 전 세계 축구팬들은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기장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사우디가 동점과 역전에 성공하자 소수의 사우디 팬들은 '일당백'으로 경기장 분위기를 뒤바꿔놨다. 일부 팬들은 단체로 메시의 라이벌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의 '호우' 세리머니를 따라 하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레바논 등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한 중동 관중들도 모두 하나가 됐다.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팬들도 도하의 수크 와키프 전통시장 등에서 응원을 이어가며 승리를 기뻐했다.

조 최약체로 분류되던 조국이 월드컵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변의 주인공이 되자 사우디 전역도 뒤집어졌다. 사우디의 수도인 리야드에서는 시민들이 공원과 광장, 카페 등에 모여 함께 경기를 지켜보면서 거리도 한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가 승리를 거두자 리야드 전체가 대표팀의 상징인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사우디는 아르헨티나전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경기 다음 날인 23일을 임시공휴일로 선포했다. 사우디 정부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민간회사 종사자를 비롯해 전국의 모든 학생들은 모두 출근 또는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고 공포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도 가족들과 역사적인 순간을 만끽했다. 중동매체 아랍뉴스 등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사우디의 승리 순간 가족들과 얼싸안고 미소를 짓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날 경기는 무함마드 왕세자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사우디는 무함마드 왕세자 주도하에 이집트, 그리스와 2030년 공동 월드컵 개최를 노리고 있다. 왕세자로선 이번 대회가 사우디 축구를 전 세계에 알리는 최고의 장이 된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연출한 드라마는 아랍 전체의 기쁨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사우디와 전쟁을 벌였던 예맨 후티 반군이 사우디에 공식적인 축하 메시지를 건넸을 정도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후티 반군 정부의 다이팔라 알샤미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사우디 대표팀의 아르헨티나전 승리에 축하를 보낸다"며 "이번 승리는 아랍 축구를 세계 축구 지도에 새롭게 그려 넣은 일"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지난 2015년 3월 예맨 내전에 개입, 2022년 4월 휴전까지 후티 반군이 장악한 지역에 2만4,600회 이상의 공습을 가했다.

두바이의 국왕이자 UAE 부통령 겸 총리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알 막툼은 경기가 끝난 뒤 자신의 SNS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승리할 자격이 있는 팀"이라며 "아랍에 기쁨을 준 사우디아라비아를 축하한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 또한 경기 종료 후 사우디 국기를 자신의 몸에 걸치며 사우디의 승리를 축하했다. 한때 서로 단교했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국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사우디는 2017년 6월 카타르가 테러단체를 지원하고 이란과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단교하고 육상·항공·해상 교통 연결을 중단한 바 있다. 지난해 1월 미국과 쿠웨이트의 중재로 관계를 회복했다.

이승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