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임 약속해놓고 화주 눈치 보는 정부

입력
2022.11.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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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가 24일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당정이 22일 긴급협의회를 열고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화물연대는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안전에 대한 화주의 책임을 축소하는 ‘반쪽짜리 연장안’으로 사실상 제도를 무력화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운송에 드는 최소의 비용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는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로, 유효기간이 올해 말까지였다. 이에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던 지속 여부는 당정의 연장 결정으로 일단 봉합되는 모양새다. 문제는 지속 방식이다. 화물운송은 대개 화주가 운수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운수사업자가 화물노동자에게 물량을 주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때 안전운임 명목으로 화주는 운수사에 운송운임을, 운수사는 노동자에게 위탁운임을 지급하는데, 당정은 이 중 운송운임을 없애는 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화물연대 측은 “대기업 화주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방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파업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수출기업들인 화주는 운송시장에서 물량을 쥐고 노동환경을 좌우하는 절대 ‘갑’인 만큼 안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운송운임 삭제에 대해 “화주의 제안이고,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공을 넘겼다.

6월 화물연대 파업 당시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품목 확대를 논의한다”고 약속하며 파업 8일 만에 중단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약속 이행을 위한 국회의 법안 논의는 진전이 없었다. 국토부는 장·차관이 잇따라 안전운임제에 대해 “일몰 폐지는 있을 수 없다” “시장경제에 맞지 않다”며 약속과 다른 발언을 이어가더니 결국 이날 당정 협의에서 품목 확대도 불가를 못 박았다.

지난 5개월간 조정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정부,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한 국회 모두 책임이 크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당정이 나섰으니 화물연대도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 바란다. 물류대란은 막아야 한다. 경제가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