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응해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소득 없이 종료됐다. 북한의 무력 도발은 '미국 탓'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중국과 러시아의 벽에 부딪히면서다. 다만 미국은 북한의 ICBM 발사를 규탄하는 안보리 의장성명을 제안하겠다고 밝혀 향후 채택 가능성을 남겼다.
21일(현지시간) 미국의 요청으로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와 한국, 일본은 북한의 거듭된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며 안보리 차원의 공식 대응을 촉구했다.
올해 들어 북한 탄도미사일과 관련해 10번째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미국은 의장성명을 제안할 것"이라며 "안보리의 모든 동료들이 북한을 강하게 규탄하고 북한의 불법 대량파괴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로 우리에 동참해달라"고 했다. 북한이 올해만 8번째 ICBM, 63번째 탄도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미국은 북한의 ICBM 발사를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한다"고 했다.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등 서방 이사국들도 나란히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면서 추가 도발 자제와 대화 복귀를 요구했다.
이해당사국 자격으로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국과 일본도 목소리를 보탰다.
황준국 한국대사는 지난 5월 북한의 ICBM 시험 발사에 대해 안보리가 소집됐지만, 추가 제재에 실패한 사실을 거론한 뒤 "북한은 훨씬 공격적이고 위험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안보리의 무대응과 분열을 이용해 핵무기를 개발했다"라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에둘러 비판했다. 한미 연합훈련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촉발했다는 중국과 러시아의 주장에 대해서도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실시됐던 방어훈련"이라며 "북한의 불법적 도발의 변명이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에도 어깃장을 놨다. 장쥔 중국대사는 "상황을 안정시키고 가라앉히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면서 "모든 당사자는 차분하게 자제하고 신중히 발언해야 하며, 계산착오로 이어질 수 있는 어떠한 행동도 피해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대응을 주문했다. 특히 장 대사는 "대화로 복귀하기 위해 미국은 신의를 보여야 한다"며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미국에 화살을 돌렸다. 장 대사는 "안보리는 이(북한) 문제와 관련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항상 규탄하고 북한을 압박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러시아 차석대사도 "미국의 동북아 지역 동맹들과 미국이 대규모 군사 훈련을 벌여 북한이 그에 따라 예상대로 행동한 것"이라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평양을 일방적으로 무장해제시키려는 워싱턴의 욕망 때문"이라며 미국을 겨냥했다. 에브스티그니바 차석대사는 "김정은의 미사일 발사는 대립을 불사하는 미국의 근시안적인 군사 행동의 결과라는 점이 명백하다"면서 "서방의 동료들이 '미국의 적대행위를 멈추게 해달라'는 평양의 거듭된 요청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가시적인 결론이 나오지 않자 한미일 등 14개국 대사들은 회의 직후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을 규탄하고 비핵화를 촉구하는 장외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안보리는 지난 2017년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397호에 따라 북한이 ICBM을 발사했을 때 자동으로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대북 정유 제품의 연간 공급량 상한선인 50만 배럴과 원유 공급량 상한선 400만 배럴을 추가로 감축한다는 구체적인 방향까지 명시돼 있다. 그러나 '자동 강화'라는 규정도 비토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벽 앞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날 안보리 회의는 북한의 지난 18일(한국시간) 거듭된 ICBM 발사를 계기로 소집됐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18일 북한이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ICBM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권에 넣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