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에서 '고릴라 학자'를 잔혹 살해한 건 누구인가

입력
2022.12.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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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영장류 학자' 다이앤 포시 살인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다이앤! 쿠푸!"

1985년 12월 27일 르완다 비룽가 산맥의 밀림. 산악고릴라를 연구하던 미국인 웨인 맥과이어는 이 같은 외침을 듣고 잠에서 번쩍 깼다. '다이앤'은 미국 출신인 동료 고릴라 학자의 이름이었고, '쿠푸'는 르완다어로 죽었다는 뜻. 맥과이어는 잠옷을 입은 채 다이앤 포시의 오두막으로 달려갔다.

눈앞엔 난장판이 펼쳐졌다. 탁자는 넘어져 있고 서랍에 정리돼 있던 연구 자료는 바닥에 마구 흩어져 있었다. 침대 발치엔 온통 피범벅인 포시가 있었다. 마체테 도검이라 불리는 벌목칼에 머리와 뺨을 난도질당한 그는 이미 숨진 뒤였다.

멸종위기종인 산악고릴라 연구에 20여 년을 바친 '3대 영장류학자'(다른 두 명은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과 오랑우탄을 연구한 비루테 갈디카스)이자 환경운동가인 다이앤 포시의 마지막이었다. 그의 나이 53세 때였다.

범인 흔적 많았지만, 경찰 수사는 '대충'

포시가 이끌던 연구 캠프 직원들은 살인 현장의 흔적을 모아 르완다 경찰에 전달했다. 모은 단서는 이랬다.

①양철 오두막 주변에서 두 사람의 맨발 발자국이 발견됐다. 당시 현지인들은 맨발로 다녔고 백인들은 신발을 신고 다녔으니, 현지인의 것일 가능성이 컸다.

②오두막 벽에 가로·세로 1m씩의 구멍이 나 있었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일까. 그러나 양철로 된 벽을 절단하는 소음을 포시가 듣지 못했을 리는 없었으니 속단할 순 없었다.

③포시의 피는 오두막 바닥에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밖에서 살해해 시신을 안으로 옮겨놨을 가능성을 가리켰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벽에 구멍을 일부러 뚫어 놓기까지 했다면,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는 의미였다.

④포시의 여권과 수표, 보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강도나 밀렵꾼 소행으로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⑤결정적으로, 포시는 오른손에 누구의 것인지 식별할 수 없는 갈색 머리카락을 쥐고 있었다.

경찰의 수사는 엉망진창이었다. 오두막 주변의 발자국 크기를 재기는커녕 사진을 찍어 두지도 않았다. 수사관들은 살인 도구로 추정되는 마체테를 맨손으로 집어들어 봉투에 넣었다. 지문 감식도 하지 않았다. 갈색 머리카락을 프랑스 연구소로 보내 유전자 감식을 했지만, 포시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전부였다.

캠프 직원들은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다이앤 포시: 안개 속의 비밀'에 출연해 이렇게 회고했다. "르완다 정부가 완전히 무능하거나 (사건을) 해결하기 싫은 것처럼 보였다. 르완다 정부가 포시의 죽음에 개입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잔혹하게 살해된 고릴라…르완다와 척진 포시

포시는 르완다 사람들에게 눈엣가시였다. 그는 1967년 9월 르완다와 콩고 국경에 걸쳐 있는 비룽가산맥 해발 3,000m 밀림에 산악고릴라를 연구하는 '카리소케 연구센터'를 차렸다. 포시는 고릴라의 행동을 흉내 내며 최초로 우호적인 소통을 하는 데 성공했다. 대중에게 익숙한 '킹콩'의 난폭한 이미지와 달리, 고릴라는 유순하며 가족을 보호할 때만 사나워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포시는 어린 수컷 고릴라 디지트와 친해졌고, 친구처럼 소통했다고 기록했다.

포시는 "고릴라를 보호해야 한다"며 마을 사람들의 생계 수단이었던 고릴라 밀렵과 르완다 정부의 고릴라 수익 사업을 막았다. 그러나 1970년대 르완다는 세계 최빈국에 속했다. 포시의 호소에도 고릴라 밀렵과 포획은 계속됐다. 당시엔 삼림을 불태워 경작지를 확보하는 화전 농업이 흔했다. 포시가 카리소케 캠프에 머문 20여 년간 주변 볼캉국립공원의 40%가 사라졌다.

산악고릴라는 발견된 지 100년도 되지 않아 멸종 위기에 처했다. 유령 가면을 쓰고 겁을 주는 온건한 방식으로 밀렵꾼들을 내쫓던 포시는 1978년 1월 디지트가 머리와 두 팔이 잘려 끔찍하게 살해된 후 '급진 보호론자'로 변신했다. 무장 밀렵 추적꾼을 고용했고, 밀렵꾼을 찾으면 그의 집에 쳐들어가 난동을 부렸다. 포시는 1981년 미국으로 추방됐다.

이후 포시는 산악고릴라의 멸종 위기를 알리는 데 헌신했다. 코넬대학교 방문연구원으로 일하며 1983년 책 '안개 속의 고릴라'를 펴냈고, TV 토크쇼에 나가 고릴라 보존을 호소했다. 디지트의 이름을 딴 보호기금 '디지트 펀드'(현재 다이앤 포시 고릴라 펀드)를 설립하고 유명인사가 됐지만, 늘 고릴라에게 돌아가고 싶어했다.

포시의 꿈은 실현됐다. 1984년 르완다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미국과 르완다 정부에 약속한 끝에 카리소케 센터로 복귀했다.

3년 만에 찾은 볼캉국립공원에선 밀렵이 줄어든 대신 정부 주도의 고릴라 관광이 성행 중이었다. 포시는 고릴라에 스트레스를 주는 관광에 반대했다. 국립공원을 관할하는 루헹게리 지역의 주지사 프로타이스 지기라니라조와 갈등을 빚었다. 그는 쥐베날 하뱌리마나 당시 르완다 대통령의 처남이었다.

포시는 국립공원 안에서 정부 고위 관료가 '금 밀수'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 인사들은 포시를 쫓아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포시 살해의 배후가 르완다 정부일 수 있다는 의심이 점점 커졌다.

증거도, 증인도, 변호사도 없는 유죄 판결

르완다 경찰의 수사는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포시의 시신을 초기에 발견한 연구원 맥과이어와 캠프에서 밀렵 단속꾼으로 일하던 현지인 엠마누엘 르웰레카나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맥과이어가 포시의 연구 성과를 빼앗기 위해 르웰레카나와 공모해 살해했다는 것이 경찰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수상한 발자국이 맥과이어의 숙소 근처에서 발견됐다"는 것을 정황 증거로 들었을 뿐, 물증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르완다 경찰은 "르웰레카나가 포시에게 해고당해 앙심을 품었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르웰레카나는 깐깐한 포시에게 질려 여러 번 사직했지만, 포시가 번번이 붙잡았다. 심지어 사건 당일 르웰레카나는 캠프에 없었다.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루헹게리 법원은 르웰레카나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교도소에 가뒀다. 1986년 9월 그가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직 교도관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 "당시 감방에 목을 맬 수 있는 도구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살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맥과이어는 미국 대사관의 지원을 받아 구속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맥과이어는 기자회견을 열고 "포시를 죽이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르완다 정부는 같은 해 12월 궐석 재판으로 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물증도, 증인도, 피고인 측 변호사도 없는 재판이었다.

16년 뒤 르완다 정치인 체포했지만…

종결된 것처럼 보였던 사건은 2001년 주지사 지기라니라조가 벨기에에서 포시 살해 혐의와 민간인 집단학살 혐의로 체포되며 새 국면을 맞았다. 영국 가디언은 "'포시 살해는 지기라니라조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르완다 정부가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그가 멸종위기종을 거래하고 금을 밀수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는 1994년 르완다 내전 당시 민간인 대량학살에 동참한 혐의도 받았다.

지기라니라조는 처벌받지 않았다. 내전 탓에 포시 사건 관련 자료가 모두 불에 타 재수사가 어려웠다. 살해 혐의로는 기소도 되지 않았다. 대량학살 혐의로 1심에선 20년 형을 받았지만, 2심 재판부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지기라니라조가 풀려난 이후 지금까지 새로운 용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산악고릴라 멸종위기는 진행중

포시는 "인간들이 저지른 어리석은 일들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고 슬퍼했다. 그는 허무하게 떠났지만, 그의 노력 덕분에 산악고릴라는 살아남았다. 1983년 242마리였던 개체수는 2019년 1,063마리로 늘어났다. 포시가 설립한 고릴라 보호기금, 동료 과학자들의 연구, 르완다 정부가 통제하는 생태관광도 도움이 됐다.

최근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전체 산악고릴라의 3분의 1이 서식하는 비룽가국립공원 일부를 콩고 정부가 경매에 부치기로 하면서다. 공원 내 열대우림에는 석유와 가스전이 분포해 있다.

포시는 숨진 지 나흘 뒤인 1985년 12월 31일 디지트 옆에 묻혔다. 그는 책 '안개 속의 고릴라'에서 간청했다. "더 밝은 내일이 오길 바란다면 사람들은 깨달아야 한다. 지금처럼 고릴라의 보존을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을 회피하는 건 고릴라 가족과 자손들을 과거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포시는 억울한 죽음을 맞았으나, 그가 남긴 말과 글은 유언이 되어 르완다의 산악고릴라들을 지켜주고 있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