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1월 22일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 암살이 수많은 의혹과 음모론에 휩싸인 까닭은 물론 그가 미소 냉전을 비롯한 수많은 갈등 서사의 교차점에 있던, 거물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정치인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도 대단했다. 범인인 미 해병 베테랑 리 하비 오즈월드가 저격 현장이 아닌 자택 인근에서 체포됐고,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점, 현장 법의학 증거들이 석연치 않게 훼손된 점, 불과 이틀 뒤 살해됨으로써 재판으로 범행 전모가 밝혀지지 못한 점도 음모론이 발아하는 토양이 됐다.
대개의 음모론은 그럴싸한 인과론에 기반을 두고, 실체적 진실 일부를 구조의 골재로 활용한다. 구소련과의 갈등을 외교적으로 완화하려던 케네디를 못마땅하게 여긴 CIA 강경파 소행설, 여러모로 마피아의 도움을 받고도 조직범죄 단속을 강화한 데 대한 마피아 보복설, 쿠바 연루설, 영국 보수당 정부와 첩보기관 배후설 등이 그 예다. 두 달 뒤 의회 워런위원회가 발표한 공식 조사보고서도 불씨들을 온전히 진화하지 못했다. 극적인 사건에는 극적인 서사를 기대하는 관객 심리가 개입하고, 좋아하는 드라마가 싱겁게 끝나는 걸 원하는 팬은 없다.
저널리스트 제임스 레스턴 주니어(1941~)는 저 다양한 설들에 또 하나를 보탰다. 오즈월드의 실제 타깃은 현장에 함께 있던 텍사스 주지사 존 코널리였다는 주장. 린든 존슨의 법률보좌관을 거쳐 케네디 정부의 해군장관을 지내고 주지사가 된 그는 해군장관 시절 해병이던 오즈월드의 불명예제대 재심 청원을 거부한 바 있었다. 소련으로 이주해 지내며 소련 시민권을 신청한 적이 있는 오즈월드는 미국으로 되돌아온 뒤 취업 등에 어려움을 겪으며 코널리에 대한 강박적 원한을 품고 그 사실을 여러 차례 피력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첫 번째 총알은 대통령의 목을 스친 뒤 코널리의 등에 박혔다. 코널리는 쓰러진 덕에 목숨을 구했지만 케네디는 상체를 고정한 리무진 등받이 때문에 두 번째 총알의 타깃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