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층 배달 갑질과 플랫폼의 책임

입력
2022.11.21 22:00
27면

일명 '29층 배달 갑질' 사건으로 온라인이 뜨겁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29층 까지 걸어 올라간 라이더에게, 손님이 전화를 걸어 음식이 식었으니 다시 가져가라고 한 사건이다. 갑질 사건의 대부분은 노동자의 마음속에 분명한 흔적을 남기지만 목격자나 증거가 없어 묻혀버린다. 다행히도 이번 사건은 여러 목격자 덕분에 세상에 알려져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당연히 부당한 갑질을 한 가해자는 잘못한 만큼 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가해자에 대한 징벌은 피해자의 회복과 재발방지라는 분명한 목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갑질 사건은 자극적인 가십거리로 소비되어 조회수 경쟁과 신상털이로 확대 재생산되는 경우가 많다.

정작, 사건 당사자들은 동네에서 계속 장사를 해야 하고 배달을 해야 하며, 삶을 이어가야 하는 주민들이다. 피해자의 회복과 일상 복귀가 제3자의 분노 표출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갑질 사건은 응징보다는 예방이 중요하고, 막지 못했다면 피해 회복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갑질 사건에 대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흔히 '감정노동자보호법'이라고 알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41조다. 우리 법은 일을 하다가 마음의 상처를 입는 걸 산업안전의 문제로 규정했다. 감정노동자 보호 법안의 핵심은 세 가지다. 사업주에게 폭언, 폭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 조치 의무를 부여하고, 노동자가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회사가 피해를 호소하는 노동자를 골칫거리로 규정해 괴롭히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요즘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폭언을 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 문구가 나온다.

이를 배달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배달앱 회사가 주문을 한 고객에게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사전 안내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배달노동자는 따뜻한 음식을 배달해 주는 소중한 이웃입니다. 폭언, 폭행을 하지 말아주세요',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배달노동자에게 폭언, 폭행 등을 하지 말아주세요'. 자영업자 역시 폭언, 폭행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산안법의 보호대상은 아니지만 플랫폼이 자영업자 보호를 위해서 '배달노동자와 음식점 사장님'에게 폭언, 폭행을 하지 말라고 경고해도 된다. 회사 차원의 경고 문구는 꽤나 효과적인데, 개인이 말싸움을 하면서 '고소한다'고 하면 무시당하기 쉽지만, 기업이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면 그렇지 않다. 또, 문제 행동을 하는 고객이 있다면 서비스 이용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반복되면 실제로 리뷰 작성 권한 제한은 물론 앱 접속 자체를 막아야 한다. 배달기업들은 배달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 배달노동자는 하루아침에 앱 접속을 막아버리는 데 반해, 소비자에 대해서는 유독 관대하다.

엘리베이터는 고장 났고, 고객은 연락이 되지 않고, 음식가게 사장도 배달대행사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배달노동자는 묵묵히 29층 계단을 올랐다. 각각의 이해관계 때문에 비워둔 책임의 자리에 일하는 사람만 외롭게 남겨놓은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분노의 도착지가 29층 손님이어야 할지, 책임을 떠넘기는 배달업계인지 차분하게 번지수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마주한 노동자가 믿고 연락할 전화번호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