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고객은 만족이 아니라 감동을 원한다

입력
2022.11.20 20:00
25면

편집자주

보는 시각과 시선에 따라서 사물이나 사람은 천태만상으로 달리 보인다. 비즈니스도 그렇다. 있었던 그대로 볼 수도 있고, 통념과 달리 볼 수도 있다. [봄B스쿨 경영산책]은 비즈니스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작은 시도다.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가 있다. "여우가 두루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여우네 집을 방문한 두루미를 여우는 반갑게 맞이하고 둥글고 납작한 접시 두 개에 수프를 담아 왔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그것을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두루미는 여우가 자신을 골탕 먹이려 했다고 생각해 화가 났다. 며칠 후 여우를 두루미네 집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두루미는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왔고, 여우는 호리병 속 음식을 전혀 먹을 수가 없었다"라는 이야기다.

여우와 두루미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역지사지 자세'의 교훈을 주는 우화로 활용된다. 어릴 적부터 배운 이 교훈을 모든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일상생활과 직장생활에서 실천하고 있다면 이 세상은 상당히 행복해질 것이다.

기업경영 관점에서도 '여우와 두루미' 우화는 중요하다. 고객만족과 고객감동의 주제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여우가 악의적으로 심술을 부렸다는 버전도 있지만, 일단 여기서는 여우가 선의로 두루미를 초대했다는 가정 아래 생각해 보자. 여우(=기업)가 선의를 갖고 두루미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고 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두루미(=고객)는 화가 나서 호리병으로 보복을 했다. 여우 사장님은 두루미 고객의 만족은커녕 (불매운동이나 비난 댓글 쓰기 같은) 감정적 보복 행동을 유발한 것이다.

고객만족경영(CSM:Consumer Satisfaction Management)은 고객의 욕구(needs)와 기대(expectation)를 충촉시키는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회사 전체 차원의 모든 경영활동에서 고객만족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영방식이다. 품질 좋으면서 가격이 저렴한, 공급하고 판매한 후에도 제품이 고장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A/S를 해 주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고객만족경영은 이제 한국인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고객만족경영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손님은 왕'이라든가 '고객제일'이라는 말들이 있기는 했지만, 기업문화나 생활문화로 고객만족이 국내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를 경영이념으로 천명한 LG그룹의 고객만족경영이 공공행정 부문에도 확산되어 '시민고객'이라는 존재하지 않았던 용어가 만들어진 게 이를 상징한다.

대기업 전문경영자 출신이 시장으로 당선된 후 시 공무원들을 민간기업 연수원에서 3박 4일 교육시켰던 주제 중 하나가 '시민고객'을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였다. 오늘날 공무원들에게 '민원'이라는 시민고객의 불만은 엄청난 직무스트레스가 되고 있을 정도지만, 시민(국민)의 원성을 해소해 주어야 하는 건 공직자의 미션이다. 시민고객의 개념을 도입했을지라도 여전히 민원이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공급자 중심의 고객만족경영이 이루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민원'이라는 단어에 시민의 원성이라는 감정적 개념이 내포되어 있듯이, 기업이 공급한 제품(서비스) 관련 불만도 고객에게는 쉽게 감정적 상처로 남아 고객의 분노로 돌변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따라서 고객만족경영은 21세기 감성경영의 시대가 열리면서 고객감동경영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고객만족경영은 제품(서비스)에 한정하여 기업이 다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고객감동경영은 고객이 감정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게 될 것인가까지 고민한다는 점에서 좀 더 고객(상대방) 중심적인 경영방식이다.

'여우와 두루미' 이솝우화를 통해 고객만족과 고객감동은 인류가 수천 년 전부터 강조해 오고 있는 인간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이자 원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기업의 궁극적 목표는 자기중심적인 이윤추구에서 더 나아가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감동까지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준다.

이춘우 서울시립대 교수·(사)기업가정신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