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전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장관이 17일 미중 대립 국면을 '전례가 없는 신형 전쟁'으로 진단하며 한국이 한중일 대화를 주도하는 방식 등으로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가드레일은 만들어졌으나 미중 간 대립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송 전 장관은 이날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2 코라시아포럼에 참석해 '미중 대립, 한국 외교의 방향은'이라는 주제로 이태규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대담했다. 송 전 장관은 2006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2006~2008년 외교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후 18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송 전 장관은 "최근 미중 대립을 어떤 용어로 담아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군사력이 동원되지 않는 신형 전쟁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현 상황과 관련해 "(블록이 형성됐던) 과거 '냉전'과 같은 말은 맞지 않다"면서 "미국은 중국이 자신을 따라잡는 위치에 오지 않게 하려 동맹 규합, 첨단기술 봉쇄 등 군사력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중 대립이) 울타리 밖으로 튀어나갈 정도는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그는 지난 1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대면 회담에 대해 "정치 기반이 정리된 상태에서 만나 국내 정치 목적으로 대외 관계를 이용하려는 유혹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며 "우려한 것보다는 안정적 국면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시 주석의 3연임 공식화 이후 고조되고 있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해선 "가드레일이 설치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미중 대립 속 한국의 선택과 관련해선 "한국은 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에 이미 경도된 상황이 바탕"이라면서도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한중일 대화를 같이 열어야 한다"고 했다. 한미일 대화는 미국과 일본이 짜놓은 판에 한국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한중일 대화 시엔 중일 간에 한국의 역할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공개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도 같은 맥락이라고 평가했다. 송 전 장관은 "해양국가이자 대륙 국가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인도·태평양은 일본이 창의해 미국이 받아들인, 해양국가의 관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개념과 조화시키는 게 한국의 중요한 임무"라고 조언했다. 인도양 및 인도의 비중을 높인 미일 주도 인도·태평양 전략에만 묻혀 가기보다 아시아의 중요성과 한국의 역할을 균형 있게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송 전 장관은 한미관계에 대해 "미국이 '줄 서라'고 하는데 우리가 '못 서겠다'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다만 "미중 관계의 공존 양식이 어떻게 될 것인지 한국과 공유하면서 동참을 요구해야 하는데, (미국이) 그냥 가자고 하니 따라가는 건 잘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에 더 많은 요구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미국의 일방적 조치에 대해 "언제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중관계에 대해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부드러운 관계로 가기 어렵다"며 '양국 안보 우려에 대한 인식 공유'와 '북핵 문제 해결 공식 마련'을 열쇠로 제시했다. 송 전 장관은 "우선 (중국의 우려를 포함한) 위험 인식 문제로 들어가야 한다"며 "둘째로 '한중이 북핵 해결 방안을 짜보자, 여기서 진전이 생기면 사드 배치도 낮추자'는 포뮬러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