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설문조사에 응한 이들은 대부분 발달장애인의 가족이었으며, 발달장애인 본인이 답한 경우는 소수였다.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 특성상,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사회적 목소리는 접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설문조사에 응답해 준 충북 제천의 발달장애인 박소연(25)씨의 목소리는 소중했다.
그는 발달장애인으로 이해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었지만, 씩씩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 무엇보다 자립을 위한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는 게 그가 강조한 말이다.
이 소망은 당사자의 소망이기도 하지만, "나 죽은 후엔..."이라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다.
소연씨는 지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충북장애인부모연대 제천지회의 제천피플퍼스트에서 발달장애인 일자리를 주선하는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일보의 '1071명, 발달장애를 답하다' 설문조사에도 "발달장애인이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게 인프라 좀 넓혀주십시오"라는 문장을 남겼다.
소연씨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취업, 즉 경제활동을 돕지만 쉽지 않다"라고 전했다. 2021년 15세 이상 발달장애인 10명 중 2명(20.3%)만이 취업을 한 상태다. 겨우 취업하더라도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채우기 위한 계약직이 대부분이라고 소연씨는 말했다.
그는 "발달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다"면서 "1, 2년 정도가 전부"라고 했다. 정규직은 고사하고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하는 회사도 드물다는 것.
실제로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들이 장애인 근로자의 절반 이상을 인턴·계약직으로 채운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고용 의무 비율만 꼼수로 채운 셈이다.
소연씨는 "1, 2년 일하고 나면 1년을 쉬고 다시 재계약해야 하는 조항이 있는 곳도 있다"면서 "발달장애인이 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중 1인 가구는 7.5%(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보건복지부). 지난해 대한민국 1인 가구 비율이 40.1%에 차지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극히 드문 숫자다.
누구에게나 자립과 취업을 위한 교육은 중요하며,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소연씨는 "대학 다닐 때 강의를 이해할 수 없거나 따라갈 수 없을 때가 있었는데, 제도적으로 서포트해 주는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자립을 위한 배움은 학교 공부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필요하다. 소연씨는 "발달장애인이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주거코치를 충북에도 배치해 줬으면 한다"라는 말로 주거권 문제를 꺼내 들었다.
주거코치는 언젠가 지역사회에서 혼자 살아가야 하는 발달장애인에게 말 그대로 '혼자 사는 법'을 알려주는 제도다. 그는 "본인의 집이나 지원주택 등에서 장보기부터 요리, 빨래, 청소 등을 옆에서 코치해 주면서 배우도록 하는 제도"라고 했다.
지금까지 장애인 복지에서의 주택정책은 장애인 거주시설이 거의 전부였던 만큼 관련 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소연씨는 "서울시가 2018년 전국 최초로 주거코치제도를 도입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만 실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피플퍼스트에 따르면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사는 장애인은 약 3만 명으로 10명 중 8명이 발달장애인이다. 피플퍼스트는 이달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시설 탈출 자유-독립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탈시설을 통해 독립과 자립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사는 64명의 발달장애인들은 이렇게 외쳤다. "누구나 다 시설에서 나와서 살 수 있습니다. 충분한 활동 지원, 일자리, 집, 마음을 나눌 동료들이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