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탐사 비법을 간직한 개기월식

입력
2022.11.17 19:00
25면

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지난 8일 밤 개기월식이 화제가 되며 월식을 관찰한 이들이 찍은 붉은 달의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덮었다. 달 특유의 희뿌연 빛이 사라지며 서서히 나타난 검붉은 색의 매혹적인 빛깔은 흡사 우리를 우주의 비밀로 안내하는 듯했다. 하지만 과거의 인류에게 월식은 불길한 징조였다. 피를 흘리는 듯한 달의 모습은 마법사의 주술이나 괴물의 위협으로 달이 위험에 빠진 상황으로 보였을 것이다.

지구의 그림자로 숨은 달은 왜 모습을 완전히 감추는 대신 검붉은 옷을 입고 나타날까? 비밀은 지구 대기를 통과하는 햇빛에 있다. 늦잠을 잔 후 열어젖힌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속에 춤추듯 부유하는 먼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먼지에 부딪힌 빛이 사방으로 산란되어 퍼지며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대기를 통과하는 햇빛도 공기 분자와 부딪히며 산란된다. 분자 하나의 영향은 미미하겠지만 대기를 구성하는 엄청난 수의 공기 분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런데 공기 분자는 햇빛이 함유한 무지개 색들과 고르게 반응하지 않는다. 파장이 짧은 파란색 빛을 더 많이 산란시켜 퍼뜨리기 때문에 파장이 긴 빨간색 빛이 살아남아 대기를 통과할 확률이 높다. 저녁 무렵 두꺼운 대기를 뚫고 눈에 들어오는 노을빛이 붉게 보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게다가 빛이 대기를 통과할 때 밀도가 높은 지표면 쪽으로 약간 휘면서 그림자에 숨은 달의 표면으로 향하게 된다. 지구 대기를 통과하며 붉은색으로 물든 햇빛이 달의 표면에 도달해 반사된 후, 다시 지구로 돌아와 우리 눈에 들어오면 개기월식의 붉은 달이 보인다.

그런데 필자는 월식을 보면서 먼 훗날 달에 건설될 기지의 우주인들이 이 장면을 본다면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상상했다. 지구에선 달이 지구 그림자에 먹히는 개기월식이지만 달의 주민들에겐 태양이 지구의 뒤로 숨는 개기일식이 된다. 게다가 지구를 둘러싼 얇은 대기층이 통과하는 태양빛으로 붉게 물들며 밤의 지구를 붉은 링이 감싸는 환상적인 모습이 펼쳐질 것이다.

내가 달 기지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라면 개기월식 때 붉은 링으로 감싼 지구를 보며 어떤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릴까? 태양-지구-달로 이어지는 빛의 흐름은 정확히 지구에서 외계행성의 대기를 연구하는 구도와 같다. 모성의 빛이 외계행성의 대기를 뚫고 지구로 향하면, 그 희미한 빛을 분석해 외계행성의 대기를 분석한다. 최근 제임스웹 망원경은 멀지 않은 외계행성의 대기 속에서 물과 이산화탄소의 존재를 확인한 바 있다.

특히 외계행성의 대기 속 생명체 존재의 표지가 될 만한 분자들이 과학자들의 주 관심 중 하나다. 지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생명이 존재하는 유일한 행성이다. 개기월식 때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는 빛에는 대기 속 분자들에 대한 정보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아직 달 기지가 없는 상황에선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방법 중 하나는 개기월식 때 지구 대기를 통과한 붉은 빛을 받은 달 표면의 반사광을 분석하는 것이다. 2019년 개기월식 당시 달 표면의 반사광을 분석한 독일 과학자들은 거기서 산소, 물 분자의 흡수선 외에도 다양한 금속 원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기법이 더 정교해져 외계행성의 대기 분석에 적용되면 지구 밖에서 생명활동의 지표를 확인할 때가 언젠간 올 것이다.

개기월식은 과학자들에게 뜻밖의 선물을 주기도 한다. 2019년의 개기월식 때 과학자들은 달 표면에서 발생한 불꽃을 최초로 관측, 분석했다. 작은 유성체와의 충돌로 발생한 이 불꽃의 온도는 섭씨 5,000도가 넘었다고 한다. 이런 선물은 물론 준비된 과학자들에게만 보인다. 시민들에게 월식은 우주의 신비와 질서를 보여주는 현상이지만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비밀을 밝힐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고재현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