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되살려 준 인간이 죽었다. 고도로 발달된 로봇이라면 슬픔을 느낄까. 망자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
'천 개의 파랑' '나인' '노랜드' 등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은 천선란의 경장편 소설 '랑과 나의 사막'(현대문학 핀시리즈)을 덮고 나면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전작에서 서정적인 SF 소설의 매력을 보여줬던 작가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신작이다.
소설은 인간이 전쟁으로 지구의 모든 것을 끝장낸 지 오래인 아포칼립스(종말) 시대(49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전쟁 시대에 만들어졌다가 기능이 정지된 채 사막에 파묻혀 있던 로봇 '고고'. 그는 자신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준 인간 '랑'이 사망하자 '랑'이 가고 싶어 했던 '과거로 가는 땅'을 찾아 떠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단 하나였던 삶의 목적을 잃은 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어릴 때 들은 아버지의 출장담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천선란 작가는 서면 인터뷰에서 "트럭으로 사막을 횡단했던 아버지의 멕시코 출장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 사막을 가로지르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선인장이 드문드문 나 있는 사막을, 고요하지만 아름답게 건너는 인물들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었고, 그 끝에 '고고'가 탄생했다.
'고고'는 로봇이지만 성장한다. 메마른 사막에서 새 인물들을 만나며 한 발씩 나아간다. 작가는 "불가능함에 도전하는, 도전 자체로도 성장인" 성장기를 쓰고 싶었다. 이룰 수 없는 것에 도전하는 일은 '시도'만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작가는 '고고'의 여정이 "슬프기보다는 설레고 아름답길" 바랐다.
이를테면 '고고'는 문득문득 자신 안에 재생되는 '랑'의 목소리가 회로 오작동이라고만 여긴다. 자신은 감정이 없고 인간의 감정을 흉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하지만 사막에서 만난 외계인 '살리'의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고고'는 '랑'을 향한 그리움이 자신의 감정이라고 깨닫게 된다. "……혹 마지막 남은 인간마저 사라졌다고 생각해봐. 그럼 너는 누구를 흉내 내고 있는 거야? 어떤 감정을 모방하는 거야?"
어쩌면 인생 자체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 '왜 이렇게 슬픔을 짊어지고 모든 인간들이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는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지 모른다. "'슬픔을 안고 행복하겠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불가능의 도전 같아요. 그래도 모든 인간이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