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승의 박원순 소송

입력
2022.11.16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취소 소송에서 15일 서울행정법원은 ‘성희롱이라 봄이 타당하고 인권위 권고 내용이나 조사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 자리엔 없었지만 소송의 핵심 플레이어는 정철승 변호사였다. 중도 사임했으나 소송 시작부터 유족 측을 대리했고 SNS 영향력을 발휘해 사건을 이슈화하며 박 전 시장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인권위가 조사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토록 하고 그중 일부인 박 전 시장과 여직원 간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해 논란을 일으켰다.

□ 재판이 보도되고 정 변호사가 증거를 발췌·공개하는 노력까지 더한 결과, 우리 사회는 성폭력 사건에서 흔한 가해자 두둔과 피해자다움 강요와 사실 공방이라는 비용을 또 치렀다. 유족 측은 희망했던 명예회복과는 정반대로 성희롱 실체가 법원에 의해 인정되면서 상처만 들쑤신 꼴이 됐다. 피해자에겐 법원의 사실 인정이 의미 있다고 할지 모르나 그러기엔 감당해야 했던 2차 가해가 지대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소송이었나.

□ 상식적인 이들의 판단으로는 애초에 이런 걸 감당할 수 없어서 죽음을 택했을 박 전 시장은 소송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기관이 전체 맥락을 살피고 판단한 것을 다시 쟁점화하고 문자를 뜯어보며 공방을 벌이는 게 정말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인지, 공방 자체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특히 의뢰인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변호사라면 유족의 희망이 허튼 것일 수 있음을 지적해야 마땅할 것이다. 간혹 대기업 오너들이 연루된 형사재판에서 형량을 낮추기 위한 변론전략이 아니라 오너의 심기를 편하게 하는 변론전략을 짜는 변호인들이 있다. 형을 사는 건 자신들이 아니기에 그렇다.

□ 유족들이 인권위와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 뜻하는 바를 깊이 생각해 보기를, 피해자의 입장 또한 살펴보기를 바란다. 그것이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로서 박 전 시장의 업적을 그나마 지키는 길일 것이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