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 전후 서울 용산경찰서의 인파 사고 경고 보고서를 둘러싼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당초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사고 우려를 적시한 정보관의 보고서를 삭제한 혐의로 용산서 정보과ㆍ계장을 입건했다. 여기에 서울경찰청 정보부장이 삭제를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은폐 시도가 일선 경찰서를 넘어 지방경찰청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특수본은 10일 용산서 소속 정보관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들은 보고서 작성자 A씨의 동료로, ‘윗선’의 강압ㆍ회유를 지근거리에서 지켜 본 목격자라 할 수 있다. 현재로선 의혹을 파헤치기가 쉽지 않다. 삭제 지시의 적법성을 가리는 것부터 난제다. 서울청이 정말 은폐 목적으로 삭제를 지시했는지도 입증이 까다롭다. 쟁점별 관련자 진술마저 전부 엇갈려 자칫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최대 쟁점은 보고서 삭제 과정에 위법 요소가 있느냐는 것이다. 참사 사흘 전 A씨는 ‘핼러윈 축제 때 사람이 몰려 사고가 날 수 있다’ 내용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해당 문건은 경찰 수집 정보를 입력ㆍ관리하는 ‘경찰견문관리시스템(PORMS)’에 등록됐다가 내부 규정에 따라 72시간 후 자동 삭제됐다. 문제는 A씨 컴퓨터에 있는 보고서 ‘원본’ 파일까지 지워졌다는 점이다. 대규모 참사의 후폭풍을 우려한 용산서 정보 간부들이 그에게 원본 보고서 삭제를 종용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 특수본의 시각이다.
입건 당사자는 손사래를 치고 있다. 원본 파일이든, PORMS 등록 보고서든 정보관이 생성한 견문(見聞)은 즉시 폐기 대상이라는 주장이다. ‘경찰관의 정보수집 및 처리 등에 관한 규정(제7조 3항)’에는 “경찰관은 수집ㆍ작성한 정보가 목적이 달성돼 불필요하게 됐을 때는 지체 없이 폐기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종종 불법 사찰 논란을 빚는 정보 경찰의 권한을 제한하자는 취지로 지난해 만든 규정이다.
용산서 정보과장 B씨는 이를 근거로 삭제 지시는 참사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 삭제를 지시한 시점은 2일인데, 전날 경찰청이 참사 관련 시민단체 동향 등을 조사해 작성한 ‘여론 동향 문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문건 유출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직원들에게 내린 단순 지시라는 설명이다. B씨는 “A씨뿐 아니라 정보과 직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지시했다”고 말했다. 다만 A씨 컴퓨터에서 보고서를 지운 의혹에는 “특수본에서 소명하겠다”고 했다.
삭제를 지시한 진짜 윗선으로 지목된 박성민 서울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도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는 최근 서울 31개 경찰서 정보과장이 모인 메신저 대화방에서 “감찰과 압수수색에 대비해 정보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인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화방에 있던 복수의 일선서 정보과장들은 “불필요한 문서 유출을 방지하게 관리ㆍ점검을 철저히 하라는 취지였다”고 입을 모았다. 특수본이 접수한 수사의뢰서에도 삭제 표현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 정보과장은 “용산서에 참사 관련 보고서를 지우라고 하고 싶었다면, 수십 명이 다 보는 채팅방에서 지시할 까닭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경찰 내부에서 미리 위험 신호를 알렸는데도, 참사 당일 ‘머리’ 역할을 하는 정보관이 단 한 명도 이태원 일대에 배치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정보 실패다. 경찰 관계자는 “통상 정보 경찰이 각종 현안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면 이런 로(raw) 데이터를 토대로 경비과에서 혼잡경비대책서를 수립한다.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용산서 정보 경찰들은 이날 거의 다 대통령실 인근 집회 관리에 투입됐다. 심지어 A씨가 “이태원 일대 정보관을 배치해야 한다. 내가 가겠다”고 요청했지만, B씨가 거부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서울청장 출신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은 “각종 결정의 종속 변수가 되는 정보의 실패가 경찰의 가장 큰 패착”이라고 꼬집었다.